나의 이야기 458

2023. 1. 13. 나만의 하늘

나만의 하늘 이현숙 용마산에 오른다. 정상에는 아무도 없다. 의자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을 독차지한 기분이다. 오롯이 나만의 하늘을 만끽한다. 깊고 깊다. 넓고 넓다. 흰 구름이 흘러간다. 모양이 수시로 변한다. 변화무쌍하다. 세월의 강을 따라 흘러가는 내 모습을 보는 듯하다. 구름 알갱이가 증발하면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아니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눈에만 보이지 않는다. 작은 입자로 분해되었을 뿐이다. 사람이 죽으면 육신도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눈에 안 보일 뿐 흙 속에 그대로 들어있다. 산산히 조각난 나는 흙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내 몸에서 빠져나간 나의 영혼도 부서지는 것일까. 영혼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무한한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일까.

나의 이야기 2023.01.16

2023. 1. 4. 전과 후

전과 후 이현숙 인생을 나누는 방법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남편이 가기 전과 후로 나누어지는 듯하다. 남편이 있을 때 보이던 세상과 가고 난 후의 세상은 왜 이리도 다를까? 모든 것이 새로워진 것 같다. 산은 같은 산이요, 나무도 같은 나무들인데 너무도 생경하게 보인다. 하늘의 구름도 달라진 듯하다. 남편이 있을 때는 어깨에 힘주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녔는데 지금은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어깨가 축 처져서 다닌다. 내가 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무슨 살인자라도 된 것 같다. 용마산 자락길에 있는 오거리 쉼터 앞에 커다란 아까시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게 멋져 보여서 여러 번 사진을 찍었다. 남편의 모습이 두 나무 사이에 박혀있다. 남편이 간 후 어느 날 가보니 한 그루가 무참히 잘려 나갔다. 언제 ..

나의 이야기 2023.01.07

2023. 1. 2. 제 3의 인생

제3의 인생 이현숙 1. 내 인생 태어나서 결혼할 때까지는 내 인생을 산 듯하다. 부모 밑에서 부모님이 해주는 밥 먹고 학교 다녔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의 공포감이 생각난다. 효제초등학교 예비 소집에 갔다. 강당으로 학생들만 데리고 들어갔다. 엄마를 떨어져 혼자 들어가려니 왜 그리도 겁에 질렸는지 선생님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전혀 모르고 계속 울기만 했다. 다시 운동장으로 나오니 엄마가 다가와 “이 바보야 울기는 왜 우니? 언니는 선생님만 똑바로 쳐다보고 잘 있었는데.” 한다. 팅팅 부은 눈으로 집에 오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현숙아 너 울었구나.” 한다. 어찌나 부끄러운지 쏜살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그 후로도 학교가 바뀔 때마다 곤욕을 치렀다. 경기여중에 들어가니 다들 어찌나 똑똑한지 주눅이 잔뜩 들어 ..

나의 이야기 2023.01.07

2022. 12. 30. 다이소에 다있소

다이소에 다있소 이현숙 산책 후 다이소에 갔다. 물걸레 청소포도 사고 예쁜 봉투도 샀다. 설날이 다가오니 손주들에게 세뱃돈 줄 때 쓰려고 설 분위기가 나는 걸로 골랐다. 다이소에는 참 다양한 물건들이 많다. 심심할 때 들러서 구경만 해도 재미있다. 요즘 우리 집에 다이소 물건이 많아졌다. 5번 동생이 집수리하느라 한 달 반 정도 우리 집에 와 있었다. 싱크대 덮개도 사다 놓고 솔도 다양하게 종류별로 사다 놨다. 병을 닦는 솔을 사 왔는데 입구가 작아서 잘 안 들어가자 자기 집으로 간 후에 더 작은 걸로 두 개나 사서 보냈다. 이 솔로 몇십 년 동안 닦지 않던 보온병을 속까지 깨끗하게 닦았다. 화장실도 욕실용 솔로 이 구석 저 구석 깨끗하게 닦았다. 동생은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데 매사에 나보다 열 배는 ..

나의 이야기 2022.12.31

2022. 12. 11. 마르지 않는 샘

마르지 않는 샘 이현숙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는다. 설거지하던 남편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죽을병 걸린 줄도 모르고 마냥 부려 먹었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 설거지를 못 하겠다고 해서 내가 툴툴거리며 했다. 식기 건조기에 넣고 건조시키면 천천히 다가와 그릇을 꺼내어 정리하곤 했다. 힘든데 왜 그리 참았을까? 자기가 말기 암이란 걸 몰랐으니 참았을 것이다. 교회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린다. 성탄절이 다가오니 준비 찬송으로 성탄절 노래를 부른다. 또 눈물이 솟아오른다. 남편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이 찬송을 부르며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내는 성탄절인 줄 상상이나 했을까? 마스크 속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마스크로 꾸욱 눌러댄다. 뒷사람이 볼까 봐 닦지를 못하겠다. 앞에 선 목사님이 볼까 봐 목사님이 ..

나의 이야기 2022.12.17

2022. 11. 26. 천태만상

천태만상 이현숙 망우산에는 데크길이 잘 닦여있어 누구나 오르기 쉽다. 정상으로 해서 데크길로 내려오는데 한 할아버지가 밑에서 올라온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스텝을 밟으면서 온다. 남의 눈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댄스를 배우나 보다. 이 할아버지를 보니 인생은 참 즐거운 거로구나 싶다. 한 아저씨는 손짓을 하며 뭐라고 떠든다. 가만히 보니 누구와 통화를 하나 보다. 핸드폰은 주머니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영상통화도 아닌데 손짓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도 모르게 손짓이 나오나 보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걷다 보면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설교를 들으며 가는 아주머니가 있는가 하면 난간에 책까지 펴놓고 서서 영어 회화를 듣는 아저씨도 있다. 캐리어에 물통을 잔뜩 넣고 할머니까지 끌고 올라가..

나의 이야기 2022.11.30

2022. 11. 23. 부부관계

부부 관계 이현숙 “저 지랄하느라고 늦게 오지.” 데크길을 걷던 한 여자가 뒤에 오는 남자에게 하는 말이다. 남자는 가까이 와서 “오다가 길을 잘못 들었어.”라고 하자 “맨날 핸드폰만 들여다보니까 길을 잘못 들지.”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저 사람들은 부부 관계가 분명하다. 연인이라면 좀 더 다정하게 말했을 것이고 그냥 아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심한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부 관계는 참 이상하다. 가장 사랑하는 사이지만 가장 미워하는 존재다. 가장 존경해야 할 대상이지만 가장 무시하는 존재다. 한 여자가 동창회에 갔다 왔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에게 화를 냈다. 남편은 무슨 일이냐, 동창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 물었다. 그러자 여자가 하는 말 “다른 사람은 다 남편이 없어서 늦게까지 노는데 나만..

나의 이야기 2022.11.30

2022. 11. 14. 다시 걷는 딸

다시 걷는 딸 이현숙 이탈리아에 있는 베드로 순례길을 걷는다. 이탈리아 말로 ‘비아 프란치제나’는 영국의 대성당이 있는 도시 캔터베리에서 프랑스와 스위스를 거쳐 로마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Via Francigena’는 프랑스에서 오는 길이란 뜻이다. 중세시대에는 교황청과 사도 베드로의 무덤을 방문하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길이자 순례길이었다. 베드로는 자기가 주님과 똑같은 자세로 죽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그의 나이 70세인 AD67년 네로에 의해 순교 당한다. 그가 순교한 자리가 지금의 바티칸 언덕이다. 베드로 성당이 있는 자리가 베드로가 처형당한 장소인 듯하다. 뙤약볕에 비포장 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갑자기 카톡 소리가 울린다...

나의 이야기 2022.11.30

2022. 10. 20. 미친 엄마

미친 엄마 이현숙 코로나로 꽉 막혀있던 하늘길이 열렸다. 3년 만에 국제선 비행기를 탔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로마에 있는 베드로 성당까지 가는 베드로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난 한마디로 미친 엄마다. 남편 간 지 한 달 만에 딸이 뇌출혈로 쓰러져 머리를 열고 수술했다. 아직도 입원 중이다. 동생들 카톡방과 가족 카톡방에 이런 여행이 있는데 가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며느리는 잘됐다고 다녀오시라고 하고 사위도 "그때쯤은 좀 좋아지겠죠." 하며 다녀오시라고 한다. 동생들은 펄쩍 뛰며 "그건 아니죠." "미숙이를 생각해서 다음 기회에 가세요." 한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 동생이 자기 아이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있는데 해외여행 간다고 하면 " 야, 너 미쳤냐?" 했을 것이다. 같..

나의 이야기 2022.11.18

2022. 10. 20. 남편 없는 남편 생일

남편 없는 남편 생일 이현숙 남편 생일이다. 남편 없는 남편 생일은 처음이다. 남편은 연말이 되면 새해 달력에 모든 기념일을 표시한다. 작년 연말에도 여전히 자기 생일을 표시했다. 이걸 적을 때 자기가 이 생일을 맞지 못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남편이 마지막으로 표시한 글씨를 바라본다. 1주일 후에 있는 장모 제삿날까지 열심히 적어놨다. 생일상은 못 차려줘도 내 먹는 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고 술 한 잔 부어 놨다. 잠시 기다렸다가 내가 다 퍼먹었다. 전날 막냇동생이 카톡방에 "내일이 형부 생일 아닌가?" 하고 올렸기에 사진을 찍어서 동생들 카톡방에 올렸다. 동생들이 잘했다고 한다. 막냇동생은 미역국을 끓이지 그랬냐고 한다. 실은 그때까지 먹던 콩나물국 남은 걸 그냥 퍼 놨다. 동생 말을 들으니 내가 너..

나의 이야기 2022.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