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2. 12. 11. 마르지 않는 샘

아~ 네모네! 2022. 12. 17. 18:08

 

마르지 않는 샘

이현숙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는다. 설거지하던 남편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죽을병 걸린 줄도 모르고 마냥 부려 먹었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 설거지를 못 하겠다고 해서 내가 툴툴거리며 했다. 식기 건조기에 넣고 건조시키면 천천히 다가와 그릇을 꺼내어 정리하곤 했다. 힘든데 왜 그리 참았을까? 자기가 말기 암이란 걸 몰랐으니 참았을 것이다.

  교회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린다. 성탄절이 다가오니 준비 찬송으로 성탄절 노래를 부른다. 또 눈물이 솟아오른다. 남편은 작년 크리스마스 때 이 찬송을 부르며 자신이 마지막으로 보내는 성탄절인 줄 상상이나 했을까? 마스크 속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마스크로 꾸욱 눌러댄다. 뒷사람이 볼까 봐 닦지를 못하겠다. 앞에 선 목사님이 볼까 봐 목사님이 고개를 숙였을 때 얼른 닦아낸다. 기도 중에는 다들 눈을 감고 있으니 맘 놓고 눈물을 찍어낸다.

  눈물샘은 왜 이다지도 마르지 않는 것일까? 언제까지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살아야 하나? 흘려야 할 만큼의 눈물을 다 쏟아내야만 마르는 것일까? 사람이 태어나서 평생 흘려야 할 눈물의 양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별로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니 앞으로 죽는 날까지 엄청난 양의 눈물을 쏟아내야 할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엄마가 야단을 치면 잘 울곤 했다. 하도 그치지 않으니까 엄마가

그만 뚝 그쳐. ! !” 하면

눈에서 국물이 자꾸 나와.” 했단다. 야단치던 엄마가 웃음이 터져 나와 야단을 칠 수가 없었단다. 눈물과 국물도 구분 못 하던 때였나 보다.

  망우산 능선길을 걷는다. 긴 나무판이 있다. 그 아래쪽으로 가면 동화천 약수터가 있다. 남편이 약수터에서 물을 지고 올라와 여기에 배낭을 올려놓고 쉬던 곳이다. 남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또 눈물이 난다. 힘이 없어 약수물도 못 뜨러 다니겠다고 했을 때 병원으로 갔어야 했는데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안 가겠다고 우겨도 강제로 끌고 갔다면 암을 일찍 발견해서 완치될 수도 있었을 텐데. 때늦은 후회를 한다. 눈물 흘리는 모습을 누가 볼까 봐 아래 눈꺼풀을 잡아당겨 눈물이 밖으로 흐르지 않게 한다.

  데크길이 시작되는 곳에 용마산자락길 표지판이 있다. 남편을 여기 세워놓고 사진을 찍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여기 서라 저기 서라 하며 사진을 참 많이도 찍었다. 서라고 하면 별로 내키지 않으면서도 고분고분 말도 잘 들었다. 지금도 새로운 것이 보이면 남편을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다. 또 눈물이 핑 돈다.

  주민센터에 들러 상속서류를 뗀다. 문을 나서려니 또 눈물이 난다. 이놈의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뿜어져 나온다. 길 가는 사람들이 볼 것 같아 얼른 닦아낸다. 눈에다 꼭지를 달았으면 좋겠다. 평소에는 단단히 잠가놨다가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서 펑펑 쏟아냈으면 좋을 텐데.

  하염없이 눈이 내린다. 거실에서 보는 용마산이 하얗게 변한다. 남편은 지난겨울 눈을 보며 그것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보는 눈인 줄 짐작이나 했을까? 하긴 나도 이 눈이 마지막으로 보는 눈일지도 모른다.

  눈물샘은 언제 마르는 것일까? 몸과 마음은 메말라 비틀어져 가는데 왜 눈물은 계속 나오는 것일까? 몸의 모든 물이 눈으로 모여드는 것일까? 사람이 죽으면 모든 구멍에서 물이 나온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염을 하려고 병풍 뒤 칠성판에 누워있는 엄마를 꺼냈다. 덮었던 헝겊을 젖히자 눈에서도 귀에서도 물이 흘러나와 베개가 푹 젖었다. 아마도 눈물샘은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마르나 보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지 궁상으로 살아야 하나. 말로 못 하니 글로 푼다. 읽는 사람도 괴로울 텐데부모 눈치 안 보고 남편 눈치도 안 보고 내 멋대로 살아보고 싶었는데 소원이 성취된 지금 왜 이다지도 쩔쩔매는 것일까? 내 몸의 반쪽이 잘려 나간 것 같은 아픔이 나를 엄습한다. 나에게 언제 남편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내 아이들을 보면 남편이 있었던 게 분명한데 말이다. 살아있을 때는 무슨 웬수 같이 지내더니 이제 와서 연인처럼 연연해하는 내 모습이 낯설다. 참 인간의 마음이란 요상해서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갑자기 친정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이런 아픔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친정엄마는 저녁밥까지 다 해놓고 아버지 오시기를 기다리며 운동화를 빨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그날 밤에 돌아가셨다. 날벼락을 맞은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내 남편은 그래도 입원한 지 한 달 가까이 끌다가 저세상으로 갔으니 나는 조금이라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불쌍하다.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으니 서로 만나 의지하고 계시겠지.

  시어머니 제삿날이다. 남편이 열심히 달력에 표시해놓은 것이 안쓰러워 내 먹는 상에 술 한 잔 부어놨다. 동생들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더니 3번 동생이 잘했다고 형부가 좋아하실 거라고 한다. 또 눈물을 찔끔 짠다. 시어머니에게 내년부터는 장손의 집으로 가시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인생은 생로병사라고 한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러운 현상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다. 내가 순수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생로병사의 4학년을 모두 마치고 빛나는 졸업장까지 받아든 남편이 부럽다. 나는 아직도 3학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눈물을 흘려야 할까? 아무래도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까지 눈물 콧물 짜내며 계속 궁상을 떨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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