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관계
이현숙
“저 지랄하느라고 늦게 오지.” 데크길을 걷던 한 여자가 뒤에 오는 남자에게 하는 말이다. 남자는 가까이 와서
“오다가 길을 잘못 들었어.”라고 하자
“맨날 핸드폰만 들여다보니까 길을 잘못 들지.”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저 사람들은 부부 관계가 분명하다. 연인이라면 좀 더 다정하게 말했을 것이고 그냥 아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심한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부 관계는 참 이상하다. 가장 사랑하는 사이지만 가장 미워하는 존재다. 가장 존경해야 할 대상이지만 가장 무시하는 존재다.
한 여자가 동창회에 갔다 왔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에게 화를 냈다. 남편은 무슨 일이냐, 동창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 물었다. 그러자 여자가 하는 말
“다른 사람은 다 남편이 없어서 늦게까지 노는데 나만 남편이 있어서 부랴부랴 집에 왔잖아.” 물론 우스갯소리로 만든 말이지만 참 그럴듯하다. 나도 남편에게 이 말을 전하면서 은근히 남편이 없었으면 하는 부러움을 드러냈다.
이제 남편이 없어졌으니 내 소망대로 되었지만, 여전히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도 남편이 있을 때가 좋았다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그런데 남편이 있을 때는 도저히 깨닫지 못하는 것이 슬프다. 이게 무슨 비극인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도록 어리석은 일인가?
단지 몸 약하고 마음 약한 남편을 빨리 데려가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남편이 이 세상에서 살 때 참 힘들어했으니 말이다. 저세상에서 아무 고통 없이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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