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58

2024. 10. 5. 이런 게 친구

이현숙 고교 친구들과 실로 오랜만에 아니 평생 처음 덕수궁에 깄다. 중고등학교 6년을 덕수궁 옆에 있는 경기여중과 경기여고에 다녔으면서 여기에 간 기억이 없다. 마침 미국 사는 정옥이가 와서 이리저리 날짜를 맞추어 이날 만나기로 했다. 덕수궁 정문 앞에서 만나 점심을 먹은 후 들어갔다. 매표소 앞에 서 있으니 표 파는 사람이 보고 경로는 표 끊지 않고 입구에서 주민등록증만 보여주면 된다고 마이크를 대고 말한다. 경로는 원래 공짜라서 표 살 일도 없지만 줄 설 필요도 없이 그냥 들어가니 참 편하고 좋다. 생각할수록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호주 사는 요심이가 건강상의 이유로 비행기를 타지 못해 함께 하지 못한 것이다. 사진이라도 보게 올려달라는 요심이 부탁이 생각나 석조전 앞에서 사진을..

나의 이야기 2024.10.10

2024. 10. 3. 껄렁한 대장

껄렁한 대장이현숙 화요트레킹 사람 다섯 명이 도봉산 오봉에 갔다. 도봉산역에서 만나 우이암 쪽으로 가는데 길옆에 얼굴 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앞서가던 선자 씨에게 서 보라고 하니 바위 얼굴에 입까지 맞춘다. 선자 씨는 항상 명랑하고 위트가 넘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승락사를 지나 우이암 쪽으로 간다. 절 이름이 특이하다. 이 절에서는 뭐든지 요구하면 다 승낙하나? 주 능선에서 오봉 쪽으로 들어가 오봉 샘터를 지나 오봉 정상을 향해 간다. 오봉의 멋진 바위가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이폼 저폼 똥폼 다 잡는다. 근처에 있는 아가씨에게 부탁해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정상 아래 헬기장을 지나 통신탑이 있는 정상에 올랐다. 네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 곳 바위에 올라가 멋들어진 사진을 찍고 네 명이 함께 단..

나의 이야기 2024.10.07

2024. 10. 5. 인똥밭에 구는 인생

인똥밭에 구는 인생이현숙   새벽기도를 마치고 골목을 나오는데 퀴퀴한 똥냄새가 난다. 문득 이 땅 밑에 얼마나 많은 똥이 들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며 북한산 쪽을 바라본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저 많은 건물의 지하 정화조에는 엄청나게 많은 똥이 저장돼 있을 것이다. 서울이란 대도시는 똥밭 위에 서 있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가를 하려고 체육관을 향해 가다 보면 길바닥에 비둘기 똥이 하얗게 떨어져 있다. 내가 저놈들의 화장실에서 사는구나 싶다. 저놈이 보기에 내가 얼마나 더럽고 추하게 느껴질까.  대학교 1학년 때 한라산에 갔다. 산에서 내려와 바닷가 비포장길을 터덜터덜 걷다가 볼일이 보고 싶어 농가 마당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힘을 주려고..

나의 이야기 2024.10.06

2024. 9. 27. 막가파 할머니

막가파 할머니이현숙   아들네 식구들이 왔다. 평소에 하던 대로 저녁 식사는 배달 음식이다. 손자가 음식을 먹으려다 말고 “할머니가 해주는 밥 먹어보고 싶다.”라고 한다. 순간 찔끔했다.  손자는 아들이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한국에 왔다. 지금 6학년이니까 한국 온 지 4년이 좀 넘었다. 아들네 식구들이 오면 난 밥 해줄 생각은 안 하고 배달시키거나 끌고 나가 외식을 한다. 요리할 자신도 없고 하기도 귀찮아서 아예 해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군말 없이 잘 먹던 손자가 반기를 든 것이다. 어쩔까나 머리를 굴리다가 냉장고에 있는 미역국이 생각나서 미역국이라도 먹겠냐고 하니 그러겠단다. 한 그릇 퍼서 전자레인지에 찌~익 돌려서 주었다. 맛있다고..

나의 이야기 2024.09.28

2024. 9. 16. 10만원짜리 고리

10만 원짜리 고리이현숙   타일 벽에 붙이는 고리를 사 왔다. 고리 뒷면에 있는 본드를 촛불에 녹여서 벽에 붙이려는 순간 녹은 본드가 손으로 뚝 떨어진다. 어찌나 뜨거운지 온몸이 자지러진다. 초의 그을음이 묻어서 그런지 본드가 새카맣다. 본드라 떨어지지도 않는다. 찬물도 붓고 소주도 바르고 했지만,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 일요일이라 병원도 안 한다. 냉동실 속 냉매제를 손에 대고 통증을 덜어보려 한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본드를 살살 당기니 떨어진다. 피부가 뻘겋게 부풀어 오르고 커다란 물집이 잡혔다.  다음 날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화상이 심하다고 물집을 터트려 물을 짜내고 소독한 후 탈지면을 대고 반창고로 붙여준다. 물이 묻지 않게 조심하라고 한다. 1주일에 3번씩 꼬박꼬박 가서 약을 바르고..

나의 이야기 2024.09.18

2024. 9. 2. 끊어야할 거미줄

끊어야 할 거미줄이현숙   망우산 능선길을 걷는다. 숲속 나뭇가지에 거미줄이 보인다. 촘촘하게 잘도 쳤다. 밑부분에는 포획물이 그득하고 집주인 거미는 위쪽 중심부에 따악 자리 잡고 앉아있다. 미동도 없다.  거미는 자기 몸에서 거미줄을 뽑아내 집을 만든다. 그 정교함이 기막히다. 사방팔방으로 방사선 줄을 친 다음 그사이를 뱅뱅 돌며 촘촘하게 그물을 짠다. 줄이 하도 가늘고 투명해서 알아보기 힘들다. 그러니까 무수한 날파리들이 걸려서 거미 먹이가 된다. 아마 나 같아도 걸릴 것이다.  한때는 거미줄이란 촘촘할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 인생도 거미줄 같아서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수록 우울증에 걸릴 일도 없고 정신적 무저갱에 빠질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이 거미줄을 끊..

나의 이야기 2024.09.02

2024. 8. 27. 수요예배 (설교문)

20년 된 병자이현숙  오늘 제가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한 것은 이 말씀이 저에게 첫 번째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친정 어머니는 절에 다니셨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대할 기회가 없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우리 과 친구 중 예수를 열심히 믿는 학생이 있었어요. 그 여학생은 고등학교 선배였는데 재수해서 한 학년이 된 학생이었어요. UBF라는 성경공부 모임이 있는데 함께 가서 공부하자고 1년 반을 졸라댔어요. 항상 거절하다가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한 번 가보자 하고 따라 갔어요. 그날 목사님이 주신 말씀이 이 말씀이었어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아~ 내가 20년 된 병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때까지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총 12년을 공부하면서 왜 선생님들은..

나의 이야기 2024.08.27

2024. 8. 26. 독거노인 맞네

독거노인 맞네이현숙   낮잠을 자려고 소파에 누웠는데 난데없이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세요? 하며 부랴부랴 윗옷을 걸치고 문을 여니 웬 여자가 서류를 들고 서 있다. 통장이란다. 서류에는 사람들 명단과 주소가 가득 적혀있다. 혼자 사느냐고 하기에 그렇다고 하니 주민센터에서 독거노인 상황 조사를 한단다. 얼마 전 한 노인이 혼자 집에 있다가 온열질환으로 숨졌다는 것이다. 누가 집에 있었으면 119라도 불러줬을 텐데 안타깝다.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기에 아들네가 자주 온다고 하니 1주일에 몇 번 오는지 묻는다. 주말에 한 번씩 온다고 하니 열심히 적는다.   주민센터에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받겠느냐고 한다. 전화만 받는 것도 되고 가정 방문을 받아도 된단다. 이것저것 묻는데 전부 안 한다고..

나의 이야기 2024.08.26

2024. 8. 22. 남편의 잔상

남편의 잔상이현숙 설거지 한 후 그릇을 행주로 닦을 때.식기 건조기에서 그릇을 꺼내 싱크대 밑에 넣을 때.남편과 비슷한 모자를 쓴 사람을 만났을 때.남편과 같은 등산 조끼를 입은 사람과 마주쳤을 때.남편과 걷는 모습이 비슷한 사람과 밎닥뜨렸을 때.남편과 같이 갔던 곳에 갔을 때.교회에서 남편이 앉던 자리를 보았을 때.거실 소파에 남편이 앉던 자리를 볼 때.가요무대 같은 남편이 즐겨 보던 프로를 볼 때.남편과 같이 걷던 망우산 오솔길을 볼 때.남편이 약수물 배낭을 놓고 쉬던 곳을 지날 때.남편과 함께 걷던 데크길을 걸을 때.데크길 난간에 올려놓은 알밤을 보았을 때.망우산 산길을 걷다가 남편이 넘어졌던 곳을 지날 때.남편과 자주 가던 식당 앞을 지날 때.아빠를 닮아 쌍꺼풀이 없는 우리 아이들의 눈을 대할 때..

나의 이야기 2024.08.22

2024. 8. 19. 껍질만 남긴 남편

껍질만 남긴 남편이현숙   망우산 데크길을 걷는다. 데크길 난간 위에 매미껍질이 보인다. 진짜 매미는 빠져나가고 껍질만 남았다. 그 매미는 어디로 갔을까. 멋진 비행을 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천생연분 짝을 만나 사랑도 하고 새 생명을 땅속에 저장했을 것이다.  껍질만 남은 매미를 보자 문득 남편 생각이 난다. 며칠 전 아이들과 남편 산소에 갔다. 벌써 2주기가 되었다. 아들네 식구는 마침 대전에 내려가 있어서 차를 렌트해서 산소로 오겠다고 했다. 나는 사위 차를 타고 딸과 함께 잠실서 출발했다. 남편 기일이 금요일인데 사위가 휴가를 내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옥천과 대전시 경계에 있는 남편 산소는 오지 중의 오지라 교통이 불편하다. 옥천에서 버스가 하루에 서너 번 밖에 안..

나의 이야기 2024.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