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463 2024. 5. 6. 최고의 선물 최고의 선물이현숙 동생과 불암산 둘레길을 걷는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혹시나 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며 "모르는 사람인데." 하니까 그쪽에서 "모르는 사람 맞아요."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꽃바구니 배달 왔는데 며느리가 보냈나보다고 한다. 이틀 전 딸이 꽃을 보냈는데 월요일에 도착할 거라고 한 기억이 떠올라 현관 앞에 두고 가라고 했다. 아저씨는 왜 며느리가 보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딸보다 며느리들이 더 많이 보내는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사진을 찍어 보낼 테니 맞나 확인하라고 한다. 사진을 보니 우리 집 현관이 맞다. 잠시 후 또 전화가 온다. 확인해 봤느냐고 묻는다. 맞는다고 하니 전화를 끊는다. 참 철저한 사람인가보다. 보통 택배기사는 현관 앞에 휙 내던지고 ‘배달 완료.. 2024. 5. 18. 2024. 4. 22. 소확행과 소확불 소확행(小確幸)과 소확불(小確不)이현숙 앞집 현관 밖에 우산이 널브러져 있다. 검은 우산은 방화문 손잡이에 걸려있고 연두색 우산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눈에 거슬린다. 며칠 후에는 시장바구니까지 놓여있다. 앞집 사람들은 공동으로 쓰는 공간을 자기네 집안처럼 사용한다.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공동으로 같이 쓰는 곳이니까 써도 되는 게 맞다. 그런데도 그 사실이 용납되지 않는 것은 내 탓이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하게 행복한 것이고 소확불이라고 하면 작지만 확실히 불행한 것이다. 이건 내가 맘대로 만든 말이다. 앞집 사람들은 쓰레기도 제때 제때 버리지 않는다. 쓰레기봉투를 현관 밖에 내놓고 죙일 뒀다가 다음 날 느지막이 버린다. 냄새가 진동한다. 이것도 마음에 걸린다. 별것도 아닌데 마음이 불편하다.. 2024. 4. 29. 2024. 3. 31. 나의 미세먼지 측정기 나의 미세먼지 측정기 이현숙 목이 칼칼하고 가래가 생긴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북한산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날은 ‘미세먼지 매우 나쁨’이다. 약간 희미하게 보이면 ‘나쁨’ 그런대로 잘 보이면 ‘보통’ 청명하게 잘 보이면 ‘좋음’이다. 청명한 날은 북한산의 케네디 얼굴이 또렷하게 보인다. 인수봉은 머리, 백운대는 코,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 움푹한 곳은 눈이다. 망경대는 입, 노적봉은 툭 튀어나온 목의 울대뼈다. 집 앞 사가정 공원에는 미세먼지 측정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건 기상대에서 측정한 결과로 표시된다. 하지만 굳이 이걸 보지 않아도 북한산만 보면 알 수 있다. 나의 미세먼지 측정기는 북한산이다. 요즘은 거의 모든 것을 기계에 의존한다. 동풍이 불면 비가 온다거나 저녁노을이 예.. 2024. 4. 6. 2024. 3. 17. 짠다고 나오나? 짠다고 나오나? 이현숙 어제 다큐온이란 TV프로를 보았다. ‘네팔에 간 K-젖소, 엄마가 되다.’라는 제목이다. 1년 전 한국 젖소 101마리를 네팔로 보냈는데 이 중 74마리가 임신에 성공했고 그중 신들리 마을에 있는 토실이라는 암소가 첫 번째 출산을 하게 되었다. 토실이의 출산을 도우려고 77세 된 김영찬 수의사는 네팔행 비행기에 오르는데 야속하게도 토실이는 예정일보다 3일 앞서 진통이 시작됐다. 홀스타인 젖소의 출산을 경험한 적이 없는 현지 수의사들이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서 주민 모두 모여서 무사히 출산하기를 기원한다. 우리나라 촬영팀이 도착하여 토실이의 출산 장면을 찍어 김영찬 수의사에게 보내며 다리가 보인다고 하자 30분만 더 기다렸다가 그래도 안 되면 다리를 잡아당겨 뽑으라고 한다. 세상 모.. 2024. 3. 18. 2024. 3. 8. 서릿발 같은 인생 서릿발 같은 인생이현숙 3월이다.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산속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음악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가까이 가보니 개구리들이 여기저기서 한창 짝짓기 중이다. 보통 때 들어보던 개구리 소리와는 딴판이다. 여기저기 개구리알이 널려있다. 고양이도 발정기가 되면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를 낸다. 하긴 사람도 섹스할 때는 기이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봄은 번식의 계절인 듯하다. 망우산 산길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난다. 보기만 해도 여리여리 야리야리하다. 만져 보면 갓 태어난 아기 살갗보다 더 보들보들하다. 저렇게 여린 싹이 어떻게 딱딱하고 무거운 흙을 뚫고 올라왔을까 신기하다. 양지쪽에는 새싹이 돋았지만, 응달에는 아직 서릿발이 군데군데 .. 2024. 3. 8. 2024. 3. 1. 자궁 속 인생 자궁 속 인생 이현숙 망우산 능선길을 걷는다. 앞에서 오는 아주머니가 “행복하세요.” 한다. 나도 “네, 행복하세요.” 하고 답례 인사를 한다. 지나오면서 “행복이 뭔디?”하고 혼잣말을 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생각한다. 이렇게 걷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걸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 싶다. 지난달에 가슴팍을 다쳐서 걷기도 힘들었다. 3주가 다 돼가는데도 기침을 하려면 아프다. 한동안 산책도 못 했다. 걸을 수 있는 건 정말 큰 행복이다. 오전에 소파에 잠깐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길을 걷는데 갑자기 앞이 안 보인다. 한쪽 눈을 가려보니 하얀 바탕에 까만 눈 한 개와 3이라는 숫자만 보인다. 다른 쪽을 가려보니 역시 하얀 바탕에 눈 한 개와 J라는 알파벳 하나가 보인다. 이걸 어떻게 하나 오늘은 3... 2024. 3. 2. 이전 1 2 3 4 5 6 7 ··· 7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