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63

2024. 9. 2. 끊어야할 거미줄

끊어야 할 거미줄이현숙   망우산 능선길을 걷는다. 숲속 나뭇가지에 거미줄이 보인다. 촘촘하게 잘도 쳤다. 밑부분에는 포획물이 그득하고 집주인 거미는 위쪽 중심부에 따악 자리 잡고 앉아있다. 미동도 없다.  거미는 자기 몸에서 거미줄을 뽑아내 집을 만든다. 그 정교함이 기막히다. 사방팔방으로 방사선 줄을 친 다음 그사이를 뱅뱅 돌며 촘촘하게 그물을 짠다. 줄이 하도 가늘고 투명해서 알아보기 힘들다. 그러니까 무수한 날파리들이 걸려서 거미 먹이가 된다. 아마 나 같아도 걸릴 것이다.  한때는 거미줄이란 촘촘할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우리 인생도 거미줄 같아서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을수록 우울증에 걸릴 일도 없고 정신적 무저갱에 빠질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이 거미줄을 끊..

나의 이야기 2024.09.02

2024. 8. 27. 수요예배 (설교문)

20년 된 병자이현숙  오늘 제가 이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한 것은 이 말씀이 저에게 첫 번째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친정 어머니는 절에 다니셨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대할 기회가 없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우리 과 친구 중 예수를 열심히 믿는 학생이 있었어요. 그 여학생은 고등학교 선배였는데 재수해서 한 학년이 된 학생이었어요. UBF라는 성경공부 모임이 있는데 함께 가서 공부하자고 1년 반을 졸라댔어요. 항상 거절하다가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한 번 가보자 하고 따라 갔어요. 그날 목사님이 주신 말씀이 이 말씀이었어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아~ 내가 20년 된 병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때까지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총 12년을 공부하면서 왜 선생님들은..

나의 이야기 2024.08.27

2024. 8. 26. 독거노인 맞네

독거노인 맞네이현숙   낮잠을 자려고 소파에 누웠는데 난데없이 초인종이 울린다. 누구세요? 하며 부랴부랴 윗옷을 걸치고 문을 여니 웬 여자가 서류를 들고 서 있다. 통장이란다. 서류에는 사람들 명단과 주소가 가득 적혀있다. 혼자 사느냐고 하기에 그렇다고 하니 주민센터에서 독거노인 상황 조사를 한단다. 얼마 전 한 노인이 혼자 집에 있다가 온열질환으로 숨졌다는 것이다. 누가 집에 있었으면 119라도 불러줬을 텐데 안타깝다. 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기에 아들네가 자주 온다고 하니 1주일에 몇 번 오는지 묻는다. 주말에 한 번씩 온다고 하니 열심히 적는다.   주민센터에서 정기적으로 관리를 받겠느냐고 한다. 전화만 받는 것도 되고 가정 방문을 받아도 된단다. 이것저것 묻는데 전부 안 한다고..

나의 이야기 2024.08.26

2024. 8. 22. 남편의 잔상

남편의 잔상이현숙 설거지 한 후 그릇을 행주로 닦을 때.식기 건조기에서 그릇을 꺼내 싱크대 밑에 넣을 때.남편과 비슷한 모자를 쓴 사람을 만났을 때.남편과 같은 등산 조끼를 입은 사람과 마주쳤을 때.남편과 걷는 모습이 비슷한 사람과 밎닥뜨렸을 때.남편과 같이 갔던 곳에 갔을 때.교회에서 남편이 앉던 자리를 보았을 때.거실 소파에 남편이 앉던 자리를 볼 때.가요무대 같은 남편이 즐겨 보던 프로를 볼 때.남편과 같이 걷던 망우산 오솔길을 볼 때.남편이 약수물 배낭을 놓고 쉬던 곳을 지날 때.남편과 함께 걷던 데크길을 걸을 때.데크길 난간에 올려놓은 알밤을 보았을 때.망우산 산길을 걷다가 남편이 넘어졌던 곳을 지날 때.남편과 자주 가던 식당 앞을 지날 때.아빠를 닮아 쌍꺼풀이 없는 우리 아이들의 눈을 대할 때..

나의 이야기 2024.08.22

2024. 8. 19. 껍질만 남긴 남편

껍질만 남긴 남편이현숙   망우산 데크길을 걷는다. 데크길 난간 위에 매미껍질이 보인다. 진짜 매미는 빠져나가고 껍질만 남았다. 그 매미는 어디로 갔을까. 멋진 비행을 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천생연분 짝을 만나 사랑도 하고 새 생명을 땅속에 저장했을 것이다.  껍질만 남은 매미를 보자 문득 남편 생각이 난다. 며칠 전 아이들과 남편 산소에 갔다. 벌써 2주기가 되었다. 아들네 식구는 마침 대전에 내려가 있어서 차를 렌트해서 산소로 오겠다고 했다. 나는 사위 차를 타고 딸과 함께 잠실서 출발했다. 남편 기일이 금요일인데 사위가 휴가를 내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옥천과 대전시 경계에 있는 남편 산소는 오지 중의 오지라 교통이 불편하다. 옥천에서 버스가 하루에 서너 번 밖에 안..

나의 이야기 2024.08.21

2024. 8. 9. 그 얼굴이 내 얼굴이네

그 얼굴이 내 얼굴이네이현숙   현관 밖에서 무슨 말소리가 들린다. 요즘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로 앞집 사람들은 친척 집에 갔는지 통 기척이 없었는데 이상하다. 말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앞집 사람들 소리가 아니다. 누가 앞집에 찾아왔나보다 하고 있는데 자꾸 우리 집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돌린다. 뭘 물어보려는가 싶어서 문을 열고 누구시냐고 하니 웬 할머니가 우리 집을 자기 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맨발로 막 들어오려고 한다. 신도 안 신었다. 같이 서 있는 남자는 여기가 아닌가 보다고 한다. 할머니를 잘 아는 남자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는 13층이 자기 집이라고 우긴다. 몇 호냐고 해도 그것도 모르나 보다. 참 난감하다. 그 남자가 나오라고 하자 다시 나갔다.  조용해져서 갔나보다 했더니 얼마 후 ..

나의 이야기 2024.08.11

2024. 8. 8. 한국은 처음이지?

한국은 처음이지?이현숙   손자는 미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한국으로 왔다. 그때 같은 학교에 다니던 친구 이름이 케이든인데 줌으로 가끔 영상통화도 하며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올 여름방학을 맞아 엄마와 함께 한국에 오겠다는 것이다. 아들네는 처가 식구들과 같이 산다. 비좁은 집에서 같이 지내기도 힘들고 열흘간 숙소를 마련해주려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며느리가 걱정을 한다. 나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열흘간 딸네 집에 가 있을 테니 우리 집에 와 있으면 어떻겠냐고 했다. 딸도 순순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푹푹 찌는 장마철에 설상가상으로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로 엘리베이터까지 멈췄다. 우리 집이 13층이라 올라다니려면 죽을 맛이다. 며느리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나의 이야기 2024.08.08

2024. 5. 9. 가장 잘한 일

가장 잘한 일이현숙   작년 4월에 남편 산소에 다녀온 지 1년이 넘었다. 올해도 가려고 했는데 아이들과 시간 맞추기가 힘들어 여태 못 갔다. 며칠 전 4번 동생이 카톡방에 산소에 가겠느냐고 묻는다. 형부 산소가 대전 둘레 산길 근처에 있는 것 같은데 산소에 갔다가 대전 둘레 산길을 걷자는 것이다. 나야 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남편 산소는 대전과 옥천 경계에 있다.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대전역에 내렸다. 길을 건너가 501번 버스를 타고 삼괴동 덕산마을에서 내렸다. 등산 준비를 하고 산길로 들어섰다. 닭재를 향해 가는 길은 작은 오솔길이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려니 개갓냉이, 꿀풀, 뱀딸기가 평화롭게 피어있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도 정겹다. 이런 곳에 남편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나의 이야기 2024.05.18

2024. 5. 6. 최고의 선물

최고의 선물이현숙   동생과 불암산 둘레길을 걷는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혹시나 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며 "모르는 사람인데." 하니까 그쪽에서 "모르는 사람 맞아요."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꽃바구니 배달 왔는데 며느리가 보냈나보다고 한다. 이틀 전 딸이 꽃을 보냈는데 월요일에 도착할 거라고 한 기억이 떠올라 현관 앞에 두고 가라고 했다. 아저씨는 왜 며느리가 보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딸보다 며느리들이 더 많이 보내는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사진을 찍어 보낼 테니 맞나 확인하라고 한다. 사진을 보니 우리 집 현관이 맞다. 잠시 후 또 전화가 온다. 확인해 봤느냐고 묻는다. 맞는다고 하니 전화를 끊는다. 참 철저한 사람인가보다. 보통 택배기사는 현관 앞에 휙 내던지고 ‘배달 완료..

나의 이야기 2024.05.18

2024. 4. 22. 소확행과 소확불

소확행(小確幸)과 소확불(小確不)이현숙   앞집 현관 밖에 우산이 널브러져 있다. 검은 우산은 방화문 손잡이에 걸려있고 연두색 우산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눈에 거슬린다.  며칠 후에는 시장바구니까지 놓여있다. 앞집 사람들은 공동으로 쓰는 공간을 자기네 집안처럼 사용한다.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공동으로 같이 쓰는 곳이니까 써도 되는 게 맞다. 그런데도 그 사실이 용납되지 않는 것은 내 탓이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하게 행복한 것이고 소확불이라고 하면 작지만 확실히 불행한 것이다. 이건 내가 맘대로 만든 말이다.  앞집 사람들은 쓰레기도 제때 제때 버리지 않는다. 쓰레기봉투를 현관 밖에 내놓고 죙일 뒀다가 다음 날 느지막이 버린다. 냄새가 진동한다. 이것도 마음에 걸린다. 별것도 아닌데 마음이 불편하다..

나의 이야기 2024.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