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파 할머니
이현숙
아들네 식구들이 왔다. 평소에 하던 대로 저녁 식사는 배달 음식이다. 손자가 음식을 먹으려다 말고 “할머니가 해주는 밥 먹어보고 싶다.”라고 한다. 순간 찔끔했다.
손자는 아들이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한국에 왔다. 지금 6학년이니까 한국 온 지 4년이 좀 넘었다. 아들네 식구들이 오면 난 밥 해줄 생각은 안 하고 배달시키거나 끌고 나가 외식을 한다. 요리할 자신도 없고 하기도 귀찮아서 아예 해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군말 없이 잘 먹던 손자가 반기를 든 것이다. 어쩔까나 머리를 굴리다가 냉장고에 있는 미역국이 생각나서 미역국이라도 먹겠냐고 하니 그러겠단다. 한 그릇 퍼서 전자레인지에 찌~익 돌려서 주었다. 맛있다고 잘 먹는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 거의 음식을 해준 게 없다. 밥은 해줬지만 거의 사료 수준이다. 우리 친정은 딸이 여섯이라 친정엄마도 김장이나 반찬을 해준 적은 없었다. 밑으로 동생이 줄줄이 5명이나 있으니 해주고 싶어도 못 해줬을 것이다. 신혼여행 갔다가 우리 집으로 올 때 고추장, 된장, 간장 딱 한 번 주었다.
그 후 김치를 담그려면 어떻게 할지 몰라서 남편에게 묻곤 했다. 남편은 배추를 씻어 소금에 절인 후 고춧가루와 파, 마늘, 새우젓을 넣고 버무리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어설픈 살림을 그런대로 잘 이어갔다.
그러다가 우리 딸이 태어날 때쯤 일 하는 할머니가 왔다. 그 할머니는 어찌나 성실하고 착한지 모든 것을 본인이 알아서 다 했다. 딸이 태어나기 한 달 전에 미리 와서 옥양목을 사다가 삶아서 배냇저고리도 만들고 기저귀도 미리미리 만들었다. 시장도 본인이 알아서 다 보고 음식도 다 만들었다. 김장철이 돌아오면 동네 아줌마들과 내가 퇴근하기 전에 다 해치웠다. 된장, 고추장, 간장도 다 알아서 담갔다. 겨울이 돌아오면 연탄도 들이고 아이들 예방주사도 낮에 병원에 가서 다 맞췄다. 밤에는 내가 낮에 학생들 가르치느라 힘들었다고 딸을 자기 방에서 데리고 잤다.
이런 할머니가 딸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제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자신의 딸 집으로 갔다. 나는 어찌할 줄을 몰라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했더니 아이들이 싫단다. 할머니는 자기들 태어나기도 전부터 와서 괜찮은데 새로운 사람이 오는 게 어색했나보다. 그래서 머리를 굴려 빨래는 남편에게, 청소는 아이들에게 떠맡겼다. 아이들이 결혼해 나갈 때까지 청소는 아이들이 하고 빨래와 설거지는 남편이 죽을 때까지 했다. 너무 부려 먹었더니 남편이 일찍 가버렸나 보다.
할머니가 가신 후 음식 만들기는 더 엉망이 되었고 만두나 송편 같은 건 내 평생에 한 번도 안 해 봤다. 딸이 어릴 때 추석이 돌아와 송편을 만들자고 하면
“난 못하니까 너 시집가면 배워서 네가 만들어 먹어.”라고 했다. 그야말로 막가파 엄마다.
일하는 할머니는 김장을 하면 앞마당에 묻어놓은 독에 저장했다. 아래층에 세 들어 사는 집도 김치를 땅에 묻었는데 난 어느 것이 우리 독인지도 몰랐다. 할머니가 외출했을 때 아무 독이나 열어서 먹고 나중에 물어보니 그게 아래층 김치란다. 할머니가 가신 후 된장독을 열어보니 바짝 말라서 할머니에게 전화하니 누룩가루를 끓여서 부으란다. 시장에서 누룩가루를 사다가 펄펄 끓여서 그냥 부었다. 나중에 할머니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된장독을 열어보더니 아니 누룩 물을 체에 밭치지도 않고 그냥 부었냐고 한다. 껍질은 걸러내고 물만 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된장 위에 있는 누룩 껍질을 다 걷어냈다.
우리 아들이 10살 될 때까지 수수팥떡을 해주어야 하는데 못 해주고 갔다고 아들 생일이면 수수팥떡을 해가지고 왔다.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하도 잘하니까 친할머니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 후로도 가끔 와서 아이들을 보고 두 아이 결혼식에도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아이들이 참 복이 많은 것 같다.
공양 중에 최고 공양은 음식 공양이라는데 나는 아이들에게나 손자에게나 도무지 해준 게 없으니 효도 받기는 다 틀렸다. 손자는 지금 외갓집에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외삼촌과 함께 산다. 외할머니 음식 솜씨가 좋아서 맛난 음식을 많이 만들어주니 살이 너무 쪄서 그게 문제다. 외할머니는 손자가 고기 먹고 싶다고 하면 당장 시장에 뛰어가서 고기를 사다가 불고기 해준단다. 초등학교 6학년인데 벌써 75kg이 넘는다. 키도 아들 키와 비슷해졌다. 아들도 살이 많이 쪘는데 아빠 닮았나 보다. 나는 아들에게 내가 음식 솜씨가 없어서 그 정도지 음식 잘했으면 더 쪘을 거라고 큰소리치곤 했었다.
이런 내가 딱 한 가지 잘하는 게 있다. 과일 까기다. 아이들이 온다고 하면 미리 과일을 깎아 냉장고에 시원하게 넣어둔다. 이건 요리처럼 신경 쓸 일도 없고 솜씨도 필요 없으니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음식이란 함께 만들고 함께 먹으며 정이 드는 것인데 이걸 못하는 나는 아이들과도 별 정이 없이 산 것 같다. 막가파 엄마에서 이젠 막가파 할머니가 되었으니 손자가 할머니에 대한 맛있는 추억이 없을 것 같다. 이제라도 요리를 배워서 손자와 음식 정을 나눠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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