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4. 9. 16. 10만원짜리 고리

아~ 네모네! 2024. 9. 18. 22:18

10만 원짜리 고리

이현숙

 

  타일 벽에 붙이는 고리를 사 왔다. 고리 뒷면에 있는 본드를 촛불에 녹여서 벽에 붙이려는 순간 녹은 본드가 손으로 뚝 떨어진다. 어찌나 뜨거운지 온몸이 자지러진다. 초의 그을음이 묻어서 그런지 본드가 새카맣다. 본드라 떨어지지도 않는다. 찬물도 붓고 소주도 바르고 했지만,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 일요일이라 병원도 안 한다. 냉동실 속 냉매제를 손에 대고 통증을 덜어보려 한다. 수돗물을 틀어놓고 본드를 살살 당기니 떨어진다. 피부가 뻘겋게 부풀어 오르고 커다란 물집이 잡혔다.

  다음 날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화상이 심하다고 물집을 터트려 물을 짜내고 소독한 후 탈지면을 대고 반창고로 붙여준다. 물이 묻지 않게 조심하라고 한다. 1주일에 3번씩 꼬박꼬박 가서 약을 바르고 드레싱을 했다. 갈 때마다 만 칠천 원씩 내야 한다. 2주를 다녔으니 10만 원도 더 들어갔다. 화장실 벽에 붙은 고리를 볼 때마다 저게 10만 원짜리 고리라는 생각이 든다.

  벌써 3주째 손에 반창고를 붙이고 물을 대지 않으려니 보통 불편한 게 아니다. 음식이나 설거지를 할 때는 고무장갑을 끼고 하니까 손이 어눌하여 불편하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아줄 만한데 샤워할 때는 비닐장갑을 끼고 해도 장갑 속으로 물이 들어간다. 한 손으로 하려면 오른손이나 오른쪽 팔을 닦을 수가 없다. 비닐장갑을 낀 채 비누질을 하려면 장갑이 거칠어서 촉감이 영 아니다. 볼일을 본 후 항상 왼손으로 밑을 닦았는데 왼손에 장갑을 끼고 하려면 불편해서 오른손으로 닦는다. 아주 어색하다. 항상 해오던 것이 익숙한데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바꾸려면 힘들다. 왼손이 잘하는 일도 있고 오른손이 잘하는 일도 있다. 머리 감을 때도 오른손에 샤워기를 들고 왼손으로 감는 것이 익숙하다. 반대로 하려니 이것도 힘들다.

  얼마 전 사가정역 근처를 지나다가 점포 정리란 입간판을 보고 혹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문구점인데 거의 다이소 수준이다. 핸드폰 케이스며 A4 용지, 온갖 펜들, 장난감, 모자, 양말, 장갑 등이 빼곡하다. 점포 정리라서 할인해서 판다. 할인에 눈이 멀어서 이 고리를 사 왔다. 몇백 원 아끼려고 들어갔다가 치료비가 몇백 배 더 들어갔다.

  요즘 동생에게 손목닥터 9988이란 앱으로 돈 버는 방법을 배웠다. 매일 이 앱에 들어가면 출석점수 10포인트를 주고 하루에 5천 보 걸으면 200포인트를 준다. 이걸 받겠다고 매일 이 앱에 들어가서 출석 체크하고 열심히 걷는다. 200원 버느라고 엄청 고생한다. 나라에서는 이 방법을 통해 운동을 시키니 국민 건강이 증진되고 자연적으로 의료비 지출이 줄어들 것이다. 포인트 쌓인 사람들에게 주는 돈보다 더 많은 의료비 절감이 될 것 같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참 좋은 발상이다. 나처럼 10원에 목매고 200원 벌려고 기를 쓰는 인간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확실히 일거양득이다.

  난 왜 이다지도 푼돈에 목숨 거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공짜를 바라는 거지 근성이 있는 것 같다. 전생에 거지였나?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공짜 좋아하는 것은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통된 본성인 듯하다. 하지만 머리는 허옇게 세고 허리는 구부정하게 굽은 이 나이에 누가 알면 꼴불견이라고 할 것 같다. 이제 너무 쪼잔하게 굴지 말고 남은 여생이라도 현명하고 우아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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