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똥밭에 구는 인생
이현숙
새벽기도를 마치고 골목을 나오는데 퀴퀴한 똥냄새가 난다. 문득 이 땅 밑에 얼마나 많은 똥이 들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며 북한산 쪽을 바라본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저 많은 건물의 지하 정화조에는 엄청나게 많은 똥이 저장돼 있을 것이다. 서울이란 대도시는 똥밭 위에 서 있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가를 하려고 체육관을 향해 가다 보면 길바닥에 비둘기 똥이 하얗게 떨어져 있다. 내가 저놈들의 화장실에서 사는구나 싶다. 저놈이 보기에 내가 얼마나 더럽고 추하게 느껴질까.
대학교 1학년 때 한라산에 갔다. 산에서 내려와 바닷가 비포장길을 터덜터덜 걷다가 볼일이 보고 싶어 농가 마당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힘을 주려고 하는 순간 구석에 있어 안 보이던 돼지가 꿀꿀거리며 내 밑으로 다가온다. 나오려던 똥이 쏙 들어갔다. 얼른 뛰어나오며 돼지가 참 더럽다고 생각했다. 하긴 똥돼지가 더 맛있다고 먹는 인간도 더럽기는 매한가지다.
전에는 시골에서 인분을 뿌려 농사를 지었으니 인간이나 돼지나 똥 먹는 건 똑같다. 직접 먹지 않아도 똥의 분자가 지구의 흙 속에, 물속에, 공기 중에 얼마나 많이 섞여 있을까. 똥 분자는 공기 분자 하나도 탈출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지구 중력에 묶여 지구에 갇혀있을 것이다. 어쩌면 지구는 커다란 똥 덩어리인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볼일을 보고 샤워기로 밑을 닦으며 내 안에도 똥이 가득하단 생각이 든다. 내가 아무리 잘 씻고 깨끗한 척해도 나는 하나의 똥주머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데 우리 모두는 인똥밭에 구는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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