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4. 10. 3. 껄렁한 대장

아~ 네모네! 2024. 10. 7. 18:39

껄렁한 대장

이현숙
 

  화요트레킹 사람 다섯 명이 도봉산 오봉에 갔다. 도봉산역에서 만나 우이암 쪽으로 가는데 길옆에 얼굴 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앞서가던 선자 씨에게 서 보라고 하니 바위 얼굴에 입까지 맞춘다. 선자 씨는 항상 명랑하고 위트가 넘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승락사를 지나 우이암 쪽으로 간다. 절 이름이 특이하다. 이 절에서는 뭐든지 요구하면 다 승낙하나?

  주 능선에서 오봉 쪽으로 들어가 오봉 샘터를 지나 오봉 정상을 향해 간다. 오봉의 멋진 바위가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이폼 저폼 똥폼 다 잡는다. 근처에 있는 아가씨에게 부탁해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정상 아래 헬기장을 지나 통신탑이 있는 정상에 올랐다. 네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 곳 바위에 올라가 멋들어진 사진을 찍고 네 명이 함께 단체로도 찍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금옥 씨가 안 올라온다.

  “금옥 씨가 왜 안 오지? 혹시 다리에 쥐가 났나?” 하는데 그때 올라온 남자가 저 아래 한 사람이 등산화를 벗고 다리를 주무르고 있단다. 부지런히 내려와 보니 금옥 씨가 맞다. 헬기장에서 등산화를 다시 신고 있다. 오른쪽 무릎 위 근육이 뭉쳐서 주무르고 있었는데 괜찮아졌다고 한다. 정상 위 통신탑을 가리키며 다 왔는데 정상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하니 가보겠단다. 그런데 조금 가다가 다시 주저앉으며 이번에는 왼쪽 허벅지가 뭉쳤다는 것이다. 거기서 다리를 주무르고 있으니 한 사람이 지나가며 근육이완제 연고를 주고 간다.
  정상에 가는 건 포기하고 다시 헬기장으로 내려왔다. 내려갈 수 있겠느냐고 하니 힘들 것 같다고 한다. 119를 부르려면 여기서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전화를 하니 여기는 경기도 송추 관할이라 거기서 올라오려면 한 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그러면서 배터리는 얼마나 남았느냐 동행인의 전화번호는 뭐냐 증상은 어떠냐 하고 한참 묻는다.

  다섯 명의 여자들이 헬기장에 쭈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나는 살살 걸으면 괜찮지 않을까 했더니 봉은 씨가 절대 안 된다고 한다. 내려가다가 다시 근육경련이 일어나 앞으로 넘어지면 얼굴이 깨질 수도 있고 이빨이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기도 발목을 다쳤을 때 움직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억지로 내려오다가 발목뼈에 금이 가고 어긋나서 철심 박고 1년을 고생했다는 것이다. 무조건 기다리면서 구조를 받는 게 좋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봉은 씨는 우리 중 가장 나이도 어린데 어쩌면 이리도 침착하고 명철하고 용의주도한지 감탄사가 절로 난다. 우리 딸보다도 한 살 어린데 말이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던 구조대는 한 시간 반이 되어도 오지 않는다. 저녁이 돼가니 등산객도 다 내려가고 땀이 식어 점점 추워진다. 바람막이도 꺼내입고 일회용 비닐 우의를 꺼내 입어도 오한이 난다. 조금 있으니 목도 아파진다. 그래도 참고 있는데 선자 씨가 자기는 다쳤던 발목도 불안하고 어두워지면 걷기 힘드니 내려가고 싶다고 한다. 선자 씨는 길을 잘 모르니 발 빠른 복선 씨와 봉은 씨가 남아서 구조대를 기다리기로 하고 선자 씨는 나와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오면서 이정표가 나타날 때마다 찍어서 카톡방에 올렸다. 이걸 보고 잘 찾아 내려오라고 여기서 어느 방향으로 오라고 일일이 설명도 붙였다. 한참 내려오는데 카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구급대가 도착하여 조치도 취하고 구급대와 함께 송추로 내려가겠다고 한다.

  안심하고 내려오는데 다시 카톡이 울린다. 그냥 내려가겠다는 것이다. 어디로 내려가겠다는 것인지 물었으나 대답이 없다. 내려오느라 바쁜가 보다. 계속 내려가는데 갑자기 헬기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멀어지는 방향을 보니 오봉 쪽으로 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다시 헬기를 불렀나 보다.
 

 

  선자 씨는 어두워질까 봐 겁이 나는지 허둥지둥 뒤도 안 돌아보고 부지런히 내려간다. 산길에 사람도 안 보이고 서서히 어두워지니 겁이 엄청나나 보다. 이런 사람을 혼자 내려보냈으면 내려가기도 전에 심장마비 일으켰을 것 같다.
  거북샘을 지나 올라가던 길이 나타나니까 그제서야 걸음이 느려지며 안정감을 되찾는다. 알던 길에 오니 안심이 되나 보다. 구봉사를 지나 도봉탐방지원센터 쪽으로 가는데 복선 씨가 다시 사진을 올렸다. 여기를 지났다는 것이다. 탐방지원센터 1.3km라고 쓰여있는 걸 보니 이쪽으로 내려오나 보다.
  선자 씨와 함께 식당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도봉산두부집에 들어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카톡방에 들어있는 금형 씨가 카톡을 보고는 전화로 누가 다쳤느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금옥 씨 다리 근육이 뭉쳐서 구조대를 불렀다고 하니 다친 것 아니면 다행이라고 하며 전화를 끊는다.
  두붓집에서 두부보쌈과 맑은 순두부를 시키고 잠시 기다리니 복선 씨와 봉은 씨가 들어온다. 이미 밖은 어두워졌다. 왜 이리 내려왔느냐고 물었더니 송추 구조대에서 14명이나 되는 구급대원이 들것을 가지고 올라왔는데 그 후 서울 쪽 도봉 산악구조대 사람 한 명이 와서 아무래도 헬기를 부르는 게 좋다고 하여 헬기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구조대원들과 송추로 내려가겠느냐고 묻는데 송추로 가면 오는 길도 몰라서 그냥 도봉동 쪽으로 내려왔단다.
  어쨌거나 다행이라고 하며 네 명이 보쌈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셨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금옥씨가 카톡을 했다. 헬기를 타고 은평성모병원에 내리니 의사와 간호사가 무더기로 나와 데리고 들어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별 이상이 없다고  해서 딸과 함께 집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후 도봉산역 쪽으로 걸어 내려왔다. 도봉산 다닌 지 56년 만에 이렇게 깜깜할 때 내려오는 건 처음이다. 봉은 씨도 이번 일로 배운 게 많다고 하며 얇은 패딩과 랜턴을 꼭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한다. 볼수록 야무지다. 배울 점이 참 많다.

  나는 나이만 먹었지 참 껄렁한 대장이다. 누가 대장 임명장 준 것도 아니고 대장이라고 불러주는 것도 아닌데 나 혼자 스스로 내가 대장이라고 생각하고 대원들을 안전하게 하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장이 아니고 실상은 75세 노약자인데 말이다. 이제 대장이란 착각은 버리고 젊은 사람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지장 부리지 말고 내 걱정이나 해야 하려나 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10. 5. 이런 게 친구  (13) 2024.10.10
2024. 10. 5. 인똥밭에 구는 인생  (12) 2024.10.06
2024. 9. 27. 막가파 할머니  (21) 2024.09.28
2024. 9. 16. 10만원짜리 고리  (10) 2024.09.18
2024. 9. 2. 끊어야할 거미줄  (0) 2024.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