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기꾼
이현숙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는 날은 빵이나 떡으로 대충 때운다. 우유 한 잔에 떡 한 조각, 계란 한 개 정도다. 먹기 전에 핸드폰을 켠다. ‘손목닥터 9988’ 앱을 열어 식단 기록을 한다. 하루에 두 번 식단 기록을 하면 50포인트 준다.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이 앱을 켜면 출석점수 10포인트 준다. 하루에 5,000보 이상 걸으면 200포인트, 집에서 하는 운동 따라 하면 또 200포인트다. 건강 지식 정보 읽고 퀴즈 맞히면 50포인트다.
다른 건 다 사기 칠 수가 없는데 집에서 하는 운동 따라하기는 사기 치기 딱 좋다. 틀어놓고 운동하지 않아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식사하면서 그냥 틀어놓는다. 소리가 시끄러우니 아예 소리는 팍 죽여버린다. 그러다가 다 끝나고 포인트 적립하라고 동전 모양이 뜨면 확인 버튼을 누른다. 하루 종일 눌러봐야 몇백 원 안 되는데 여기다 목숨 건다.
포인트가 쌓이면 서울페이로 전환해서 물건 살 때 쓸 수 있다. 어제는 동네 마트에 가서 상추와 순두부, 메추리알을 샀다. 완전 깨소금 맛이다. 평생 부동산 투기는 한 번도 못 해 봤는데 이렇게 하찮은 일에 매달리는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쪼잔한 인간이다. 남들은 아파트 청약도 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몇억씩 버는데 나는 그 흔한 아파트 청약 한 번 안 해봤다. 아니 못 해 봤다. 나는 정말 그릇이 작은 인간인가보다.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사기 치고 돈 버는 것은 틀림없는 범죄행위다. 하지만 별 죄의식 없이 이런 일을 자행한다.
성경에 보면 다윗왕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천하의 죄인이다. 자신의 부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데려다가 동침하고 그녀가 임신하자 전쟁터에 있는 우리아를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부인과 동침하게 하여 자신의 죄를 감추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아는 다윗왕을 만난 후 자신의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부하들과 잠을 잔다. 다윗은 음식까지 하사하며 집으로 가기를 유도했지만 우리아는 집에 가지 않았다. 다음 날 다윗왕이 우리아를 불러다가 전쟁터에서 오랜만에 왔는데 왜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우리아는 자신의 상관 요압과 부하들이 전쟁터에 있는데 어찌 자기만 집에 가서 먹고 마시며 부인과 동침할 수 있겠냐고 하며 이날도 집에 가지 않는다. 이 일을 행하지 않기로 왕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한다고 말한다. 어찌할 수 없는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보낸다. 그 편지에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다른 사람은 뒤로 물러나서 우리아가 맞아 죽게 하라고 썼다. 요압은 왕의 명령대로 하여 우리아를 전사하게 하고 다윗에게 전령을 보내 우리아의 죽음을 알린다. 그 후 다윗은 밧세바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는다. 밧세바가 낳은 아이는 죽고, 그 후에 다시 임신하여 낳은 아들이 솔로몬이다.
죄란 무엇일까. 따지고 보면 다윗은 강간범이고 살인 교사범이다. 누가 생각해도 천하에 죽일 놈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런 인간을 그토록 사랑하고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을까?
사실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 무슨 죄를 지어서라기보다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돼지가 돼지로 태어나고 소가 소로 태어난 건 그 유전자를 받고 태어나서다. 돼지가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돼지다. 사람도 죄인의 유전자를 받고 태어났으니 죄인일 수밖에 없다. 배 속의 아이도 아무 죄를 지은 것이 없지만 죄인이다. 아마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죄인이 되었고 그 유전자가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윗이나 나나 똑같은 죄인일 것이다. 사실 태어나서 지은 죄는 다 거기서 거기다. 도찐개찐일 것이다. 천하의 성인군자도 죄인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냥 하나님의 처분만 바랄 뿐이다. 오늘도 나는 이런저런 죄를 지으며 살고 있다.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계속 죄를 지을 것이다. 그저 하나님의 용서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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