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4. 11. 4. 마음으로 읽는 글씨

아~ 네모네! 2024. 11. 4. 16:01

마음으로 읽는 글씨

이현숙

 

  엘리베이터 벽에는 여러 가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방법과 흡연 금지, 전기차 충전 방법 기타 등등 말이 많다. 그림까지 천연색으로 인쇄하여 예쁘게 붙여놨다.

  그중 흡연에 관한 안내가 눈을 끈다. 아래층 아저씨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는지 가끔씩 담배 냄새가 훅 올라온다. 그러면 창문을 얼른 닫는다. 그랬다고 관리소에 민원을 제기한 적은 20년이 넘도록 한 번도 없었다. 한 번은 며느리가 왔다가 냄새를 맡고는 관리실에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다. 나는 문 닫으면 된다고 했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소극적 성격 때문이다.

  흡연 금지에 대한 안내문이 한 달 이상 붙어 있다. 무심코 들여다보니 문구가 좀 이상하다. 화장실에서 금연 시 상층까지 냄새가 올라가 민원이 발생하니 자제해 달라는 것이다. '흡연 시'' 금연 시'라고 썼는데 왜 여태까지 한 달이 넘도록 내 맘대로 흡연 시라고 읽었는지 깜짝 놀랐다. 어쩌면 우리들은 글씨를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지도 오른다.

  요가 가는 길에 마침 출근하는 관리소장님과 만났다. 엘리베이터 안내문에 흡연 시가 금연 시로 되어 있다고 했더니 누가 개인적으로 붙였나보다고 한다. 그런 게 아닌 것 같다고 하려다가 아무 말 안 했다. 다음 날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보니 흡연 안내문을 떼고 층간소음에 관한 안내문으로 바꿔 놓았다. 소장님이 확인했나 보다. 우리 아파트 관리소장님은 주민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나 보다.

  이런 일은 카톡방에서도 가끔 일어난다. 몇 년 전인가 동생들과 북한산 갈 때 일이다. 동생은 구파발역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내 멋대로 불광역이라고 읽었다. 불광역에 가서 아무리 기다려도 동생이 오지 않는다. 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자기는 벌써 와 있다는 것이다. 리어커에서 음식 파는 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곳이 없다고 했더니

" 언니 거기 어디야?" 한다.

불광역이라고 했더니 내가 언제 불광역으로 오라고 했냐고 빨리 지하철 다시 타고 구파발역으로 오라고 한다. 다시 카톡을 보니 구파발역이다. 전에 몇 번씩 확인했는데 계속 불광역이라고 읽었으니 참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그런 일은 그 후에도 있었다. 같이 근무하던 선생님들 모임에서다. 카톡에 선정릉역이라고 했는데 나 혼자 선릉역으로 보고 선릉역에 가서 기다렸다. 약속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안 보여 전화를 하니 선정릉역이란다. 다시 전철을 타고 선정릉역으로 갔다. 가서 미안하다고 하니 한 선생님 왈 다른 사람은 다 그런 실수를 해도 나만은 절대 그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단다.

앞으로 살면서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믈라 마음이 불안 불안하다. 도대체 눈은 뭐하러 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지 맘대로 읽으면서 말이다. 앞으로는 마음을 믿지 말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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