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4. 5. 6. 최고의 선물

아~ 네모네! 2024. 5. 18. 16:24

최고의 선물

이현숙

 

  동생과 불암산 둘레길을 걷는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혹시나 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며 "모르는 사람인데." 하니까 그쪽에서 "모르는 사람 맞아요."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린다. 꽃바구니 배달 왔는데 며느리가 보냈나보다고 한다. 이틀 전 딸이 꽃을 보냈는데 월요일에 도착할 거라고 한 기억이 떠올라 현관 앞에 두고 가라고 했다. 아저씨는 왜 며느리가 보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딸보다 며느리들이 더 많이 보내는지도 모른다. 아저씨는 사진을 찍어 보낼 테니 맞나 확인하라고 한다. 사진을 보니 우리 집 현관이 맞다. 잠시 후 또 전화가 온다. 확인해 봤느냐고 묻는다. 맞는다고 하니 전화를 끊는다. 참 철저한 사람인가보다. 보통 택배기사는 현관 앞에 휙 내던지고 배달 완료문자 하나 띡 날리는데 말이다.

  이틀 전에는 꽃바구니가 방화문 손잡이에 걸려있다. 딸이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꽃을 보내니까 혹시나 하고 카톡으로 꽃 보냈냐고 하니 아니란다. 앞집에 온 건가 보다 하고 한참 뒤에 나가보니 그대로 걸려있다. 누가 배달을 잘못했나 싶어 그대로 두고 있자니 꽃이 시들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꽃에 물을 주려고 물 주전자를 들고 나가니 없어졌다. 참 걱정도 팔자다. 내가 생각해도 웃긴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노인이다.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다.

  며느리는 이틀 전에 카네이션 화분과 관절 약을 들고 집에 왔다. 해마다 아이들에게 꽃바구니를 받다 보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한 송이면 충분한데 바구니를 보내니 이거 엄청 비쌀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효도를 못 받는 남편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효도를 받으려면 일단 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TV 옆에 꽃을 놓고 보니 기분이 좋다.

  사실 부모 자식간에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내가 애들에게 해준 일은 그저 밥이나 먹였던 것밖에 없다. 그것도 사료 수준의 엉성한 밥이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일 하는 할머니가 있어서 잘 해줬는데 조금 커서 할머니가 가버리자 난감했다. 직장생활하기도 힘들고 해서 주로 사다 먹이거나 얻어다 먹였다. 아들은 김치 맛이 좀 다르다 싶으면 이거 어디서 가져온 거야?” 하곤 했다. 내가 김치를 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랬다고 교육이나 제대로 시켰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설거지하는데 책을 들고 와서 받아쓰기 해달라고 하면 그냥 책보고 아무거나 적당히 골라서 써.” 했다. 독후감을 써오라고 하면 대충 책 앞부분과 뒷부분을 보고 써가라고 했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대로 잘 성장한 것은 학교 선생님과 교회 선생님들 덕인 것 같다.

  이제 다 결혼해서 나갔으니 이것도 끝이다. 어쩌다 집에 오면 밥해줄 생각은 안 하고 끌고 나가 외식하거나 배달시켜 먹는다. 본인들이 먹고 싶은 거 알아서 시키고 자기 카드로 계산한다. 나는 "얼마야?" 하고는 핸드폰으로 즉시 계좌이체 해준다. 내가 하는 일은 그저 손가락 몇 번 까딱까딱하는 게 전부다. 참 양심도 없다. 다른 엄마들은 애들이 온다고 하면 이것저것 해 먹이느라 바쁜데 말이다.

  내가 이 나이에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무엇일까? 잘 먹고 잘 노는 게 아닐까 싶다. 꼼짝 못 하고 집에 누워서 여기 아파 저기 아파하면 애들이 얼마나 괴롭겠냐 말이다. 반대로 애들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무엇일까? 어버이날 꽃 보내주는 일도 물론 좋지만 가장 좋은 일은 잘 먹고 잘사는 일이다. 요즘은 사네 못사네 하다가 이혼하는 일도 많은데 찍소리 없이 잘 살아주는 게 최고다. 알콩달콩 까지는 잘 모르겠고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며 지내고 있다. 그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아줬으면 좋겠다.

  부모 자식간에 가장 잘하는 일은 각자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일이다. 더 이상 뭘 바라랴.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선물은 각자 잘 살아서 서로에게 걱정 끼치지 않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