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4. 3. 31. 나의 미세먼지 측정기

아~ 네모네! 2024. 4. 6. 20:17

나의 미세먼지 측정기

이현숙

 

  목이 칼칼하고 가래가 생긴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북한산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날은 미세먼지 매우 나쁨이다. 약간 희미하게 보이면 나쁨그런대로 잘 보이면 보통청명하게 잘 보이면 좋음이다. 청명한 날은 북한산의 케네디 얼굴이 또렷하게 보인다. 인수봉은 머리, 백운대는 코,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 움푹한 곳은 눈이다. 망경대는 입, 노적봉은 툭 튀어나온 목의 울대뼈다.

  집 앞 사가정 공원에는 미세먼지 측정기가 설치되어 있다. 이건 기상대에서 측정한 결과로 표시된다. 하지만 굳이 이걸 보지 않아도 북한산만 보면 알 수 있다. 나의 미세먼지 측정기는 북한산이다.

  요즘은 거의 모든 것을 기계에 의존한다. 동풍이 불면 비가 온다거나 저녁노을이 예쁘면 날이 맑고, 아침노을이 붉으면 비가 온다는 상식은 거의 다 잊어버렸다.

  내비게이션이 나온 후로는 길치가 되었다. 예전에는 길을 외우거나 지도를 보며 다녔는데 이제 내비게이션이 명령하는 대로만 움직이다 보니까 길을 자세히 보지도 않는다.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는 지도를 보며 다녔다. 남편이 운전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지도를 보며 주둥이 운전을 한다. 얼마 정도 가서 몇 번 도로에서 우회전해라. 그 후 얼마 가서 몇 번 도로를 만나면 좌회전을 해라. 규정 속도가 얼마이니 속도를 줄여라. 어쩌다 내가 졸아서 잘못된 길로 가면 남편은 조수가 조는 바람에 잘못 들어왔다고 타박을 한다. 내가 운전은 못 하지만 주둥이 운전은 1급 기사다. 20년 넘게 주둥이 운전을 했더니 전국 지도가 머리에 그려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날 보고 걸어 다니는 지도라고 했다. 내비게이션이 개발된 후에는 인간 내비게이션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제 그것도 안 하니 머릿속이 텅 비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노래방 기기가 나온 후로는 노래 가사를 다 잊어버렸다. 애국가를 빼고는 아는 노래가 없다. 노래를 시키면 핸드폰에서 찾아 가사를 보며 불러야 한다. 전화번호도 그렇다. 핸드폰에 다 들어있으니 한글만 알면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건다. 예전에는 제법 많은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는데 이제 아들, 딸 전화번호도 모른다. 내가 외우고 있는 단지 한 개의 전화번호는 남편 전화번호였다. 010-3795-6022이다. 그런데 남편이 가버리고 핸드폰도 해지해 버렸으니 아무 쓸모가 없어졌다.

  모든 것은 사용해야 점점 발달하는데 도무지 머리를 쓰지 않으니 점점 골빈당이 되어간다. 촉이 무디어지고 더듬이가 떨어져 나간다. 이러다가 아주 백치가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것을 컴퓨터와 로봇에게 맡기고 멍청하니 살다 보면 로봇의 노예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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