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小確幸)과 소확불(小確不)
이현숙
앞집 현관 밖에 우산이 널브러져 있다. 검은 우산은 방화문 손잡이에 걸려있고 연두색 우산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눈에 거슬린다.
며칠 후에는 시장바구니까지 놓여있다. 앞집 사람들은 공동으로 쓰는 공간을 자기네 집안처럼 사용한다.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공동으로 같이 쓰는 곳이니까 써도 되는 게 맞다. 그런데도 그 사실이 용납되지 않는 것은 내 탓이다.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하게 행복한 것이고 소확불이라고 하면 작지만 확실히 불행한 것이다. 이건 내가 맘대로 만든 말이다.
앞집 사람들은 쓰레기도 제때 제때 버리지 않는다. 쓰레기봉투를 현관 밖에 내놓고 죙일 뒀다가 다음 날 느지막이 버린다. 냄새가 진동한다. 이것도 마음에 걸린다. 별것도 아닌데 마음이 불편하다. 계단의 창문이라도 열어 놓고 싶은데 방화문까지 굳게 닫아 놓는다. 그게 맞기는 한데 컴컴하니 싫다. 작은 불행이다.
지하철을 타려고 정류장에 서 있다. 지하철이 들어오는 순간 뒷사람이 내 앞으로 잽싸게 들어와 먼저 탄다. 빈자리에 가서 얼른 앉는다. 공연히 밉다. 에스컬레이터에서도 뒤에 있다가 슬금슬금 앞으로 가더니 내 앞으로 들어와 새치기를 한다. 기분 나쁘다. 지하철 화장실에 줄을 서 있다. 뒤에 있던 여자가 세면대 쪽으로 간다. 손을 씻으려고 가나 보다 했더니 슬그머니 줄 앞으로 들어선다. 그녀의 얼굴을 다시 쳐다본다.
망우산 정상에 올라보니 아래쪽에 나물을 뜯는 여자가 보인다. 보기 좋다. 옆에는 남편인지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남자도 있다. 부부의 행복한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이 부부는 오늘 저녁에 봄나물을 먹으며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할 것이다. 인생 뭐 별거 있나. 이런 게 행복이지 싶다. 보는 나도 행복하다.
좀 더 걸어가다 보니 나뭇가지에 열쇠가 매달려 있다. 벌써 몇 주째 매달려 있다. 주인이 어디서 잃은 걸 모르는지 아주 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열쇠를 매단 사람의 심정이 어떨까.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서 정성껏 매달았을 것이다. 그 마음이 곱다. 내 마음도 고와진다.
작년 여름에 노르웨이 피요르 트레킹 갔을 때다. 쉐락볼튼 가는 길에 동생이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하산할 때 보니 누군가 철봉으로 된 고리에 장갑을 끼워놓았다. 내가 얼른 빼서 동생에게 주었다. 어떤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걸 보고 내려올 때 찾아가라고 구멍에 끼워 넣었나 보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 마음이 고맙다. 이거야말로 소확행이다. 사실 별로 비싼 장갑도 아니다. 서울서 근교 산행을 하다가 산 밑에서 내가 동생에게 사 준 것이다.
수요예배에 갔다. 앞에 앉은 여자 때문에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저 여자는 왜 파마를 저렇게 요란하게 해서 사자 대가리를 만들었나.' 하며 속으로 궁시렁 거린다. 작은 불행이다.
창가에 둔 겨자씨가 싹이 났다. 목사님이 3월말에 은퇴하면서 방 정리를 하다가 이스라엘 갔을 때 산 거라고 하며 몇 개씩 나누어 준 것이다. 어찌할까 하다가 작은 컵에 솜을 깔고 정수된 물을 넣고 씨를 뿌렸다. 3주가 지나도 깜깜 무소식이다. 너무 오래 되서 죽었나보다 생각한다. 그냥 버릴까 하다가 혹시나 하고 계속 물을 주었다. 4주쯤 되었는데 한 개가 약간 터졌다. 물을 너무 주어 불어 터졌나보다 생각하고 며칠을 기다리니 약간 푸른색이 돈다. 설마 하고 기다렸는데 작은 떡잎이 보인다. 희열을 느낀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또 확대해서 찍었다.
목사님께 사진을 보내드렸다. 목사님도 놀라면서 그렇게 오래됐는데 싹이 났느냐고 기뻐하신다. 내 생각에도 목사님이 성지순례 가신지는 10년이 넘었다. 참 생명의 힘이 대단하다. 10년 넘게 동면 상태로 있다가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나다니 이거야말로 기적이다. 죽은 남편이 살아온 기분이다. 작은 행복을 느낀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작은 일에 울고 웃는다. 오히려 큰일을 당하면 담담하다. 인간은 몸도 마음도 작기 때문일까? 소확행이 모여서 대확행이 될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소확행도 많고 소확불도 많다. 그런데 그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똑같은 상황을 마주해도 누군가는 행복하게 느끼고 누군가는 불행하게 느낀다. 자신이 행복할 때는 모든 것이 행복으로 받아들여지고 자신이 불행할 때는 모든 것이 불행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소확불을 소확행으로 바꾸는 길은 나 자신이 먼저 행복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소확행과 소확불을 겪으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5. 9. 가장 잘한 일 (0) | 2024.05.18 |
---|---|
2024. 5. 6. 최고의 선물 (0) | 2024.05.18 |
2024. 3. 31. 나의 미세먼지 측정기 (0) | 2024.04.06 |
2024. 3. 17. 짠다고 나오나? (2) | 2024.03.18 |
2024. 3. 8. 서릿발 같은 인생 (2) | 2024.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