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처음이지?
이현숙
손자는 미국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한국으로 왔다. 그때 같은 학교에 다니던 친구 이름이 케이든인데 줌으로 가끔 영상통화도 하며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올 여름방학을 맞아 엄마와 함께 한국에 오겠다는 것이다. 아들네는 처가 식구들과 같이 산다. 비좁은 집에서 같이 지내기도 힘들고 열흘간 숙소를 마련해주려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며느리가 걱정을 한다. 나는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열흘간 딸네 집에 가 있을 테니 우리 집에 와 있으면 어떻겠냐고 했다. 딸도 순순히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런데 푹푹 찌는 장마철에 설상가상으로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로 엘리베이터까지 멈췄다. 우리 집이 13층이라 올라다니려면 죽을 맛이다. 며느리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이런 상태인데 그래도 우리 집에서 지낼 건가 케이든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래도 여기로 오겠다는 것이다.
그날부터 슬슬 걱정이 된다. 집 안 청소도 하고 처음 왔을 때 보라고 흰 종이에
WELCOME
KEYDEN & MOM이라고 쓰고 사탕도 2개 놓았다.
케이든 스펠을 몰라 번역기로 찾아보았는데 맞나 모르겠다.
아들네도 몇 날 며칠 짐을 날랐다. 생수는 엘리베이터 멈추기 전에 미리미리 배달시키고 매트리스도 미리 갖다 놓았다. 먹을 거며 입을 것, 손자가 쓸 첼로까지 아들이 지고 13층까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지고 올라왔다.
케이든이 온다는 날 새벽 4시에 인천공항 도착이라고 해서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렸다. 요가를 마치고 집에 와서 짐을 지고 나오려다 무심코 카톡을 보니 아뿔싸 오늘이 아니고 내일 온다고 며느리가 카톡을 보냈다. 거기서 밤늦게 출발하면 이틀 후 도착인데 하루 후 도착인 줄 착각했단다.
여유 있게 점심까지 먹고 배낭과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그래도 비가 안 와서 천만다행이다. 딸네 집에 도착하니 외손녀 방에서 자라고 한다. 내가 거실에서 자려고 했더니 내가 거실에 있으면 아이들이 더 불편하단다. 손녀 방에 들어가니 장난감도 비닐봉지에 넣어 잘 정리하고 방도 깨끗이 정돈해 놓았다. 짐도 많이 딸 방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손녀는 딸 방에서 자고 주말에 오는 사위는 거실에서 자겠단다. 순간 내가 엄청난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여러 명을 괴롭힐 줄 몰랐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이렇게까지 불편을 끼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몸이 불편한 딸은 내 식사까지 챙기느라 더 힘들어졌다. 참 철딱서니 없는 엄마다. 뭘 도와주려 해도 내 살림이 아니니 선뜻 손이 가질 않는다. 딸과도 20년 이상 떨어져 살다 보니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며느리와 손자가 우리 집에 와 있으니 처가에 혼자 있기가 불편하다고 대전으로 내려갔다. 거기는 기숙사도 있고 연구실도 있어서 거기가 더 편하다는 것이다. 세 집식구가 생활 패턴이 바뀌어서 엉망진창이 되었다.
모든 일은 사전에 그 파급 효과를 충분히 생각해야 하는데 내가 너무 경솔했던 것 같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이번 일이 케이든에게나 친손자에게나 좋은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 딸네 식구들과도 더 많은 이해를 쌓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손자는 내가 케이든이 오면 뭘 할 거냐고 물으니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프로에 나오는 것처럼 자기도 그렇게 하겠단다. 손자는 케이든이 오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영어로 연습도 하고 나름 긴장도 하는 듯했다.
열흘이 지나고 케이든이 간 후 집에 와보니 케이든과 엄마 리사가 감사의 글과 선물을 두고 갔다. 한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글로 썼나 궁금해서 나중에 물어보니 케이든이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한 후 손자가 번역하여 노트북에 입력해줬단다. 케이든은 여기에 종이를 놓고 그대로 따라서 그렸다는 것이다. 리사도 감사의 편지를 쓴 후 미국서 사 온 핸드백을 두고 갔다. 미안하다. 그래도 고맙다. 허름한 아파트에 13층까지 걸어 다니느라 고생했을 텐데 세심한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찡하다.
손자에게 '한국은 처음이지? '에서 처럼 한국 구경 잘 시켜주고 맛있는 거도 사줬냐고 하니 용마폭포 공원 가서 물놀이도 하고 롯데월드도 가고 맛난 것도 먹으며 잘 놀았단다. 집에서 같이 공부도 하고 자기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놀기도 했단다.
인간의 만남이란 참 신기하고 오묘해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만나고 또 헤어지게 된다. 케이든과 손자의 만남도 그중 하나다. 아들이 결혼 후 10년이나 지나서 미국 유학 중에 태어난 것도 그렇고 박사과정을 클레어먼트에서 하게 된 것도 그렇다. 어렵게 만난 사이이니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관계로 발전했으면 참 좋겠다. 어찌 보면 같은 시기에 지구라는 같은 행성에 태어나 같이 산다는 것 자체가 큰 인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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