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질만 남긴 남편
이현숙
망우산 데크길을 걷는다. 데크길 난간 위에 매미껍질이 보인다. 진짜 매미는 빠져나가고 껍질만 남았다. 그 매미는 어디로 갔을까. 멋진 비행을 하며 우렁찬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천생연분 짝을 만나 사랑도 하고 새 생명을 땅속에 저장했을 것이다.
껍질만 남은 매미를 보자 문득 남편 생각이 난다. 며칠 전 아이들과 남편 산소에 갔다. 벌써 2주기가 되었다. 아들네 식구는 마침 대전에 내려가 있어서 차를 렌트해서 산소로 오겠다고 했다. 나는 사위 차를 타고 딸과 함께 잠실서 출발했다. 남편 기일이 금요일인데 사위가 휴가를 내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옥천과 대전시 경계에 있는 남편 산소는 오지 중의 오지라 교통이 불편하다. 옥천에서 버스가 하루에 서너 번 밖에 안 들어가니 차 없이는 가기 힘들다. 마침 방학 중이라 손자도 같이 갔다.
산소에 도착해서 납골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남편 유골함이 들어있는 곳의 문을 여니 유골함이 얌전히 들어있다. 안심이 된다. 아들은 물티슈를 가져다가 먼지를 닦는다. 납골당 앞 상석에 과일과 포를 놓고 술도 부어놓았다. 묵도를 한 후 아들이 간단히 기도를 했다. 오랜만에 아들, 딸, 손자까지 왔으니 남편이 기뻐했을 것 같다. 8월의 뙤약볕 아래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어 금방 내려왔다.
남편은 이미 하늘나라로 가고 없는데 남편 껍질에다가 성묘를 한 것일까? 제사 때나 성묘할 때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어쩌면 자손을 먹이고 싶어하는 조상들의 지혜인지도 모른다. 산소에 올라가려면 힘든데 자손들이 지치지 않도록 음식을 가지고 오라고 했을 것 같다. 결국은 내 자손이 먹는 거니까 말이다.
내가 어려서 성남시 큰댁에 갔을 때다. 벌써 70년 전이니 성남시가 아니고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여수리다. 큰댁이 있는 마을에는 고성 이씨 몇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한 여름인데 근처 사는 아저씨가 큰댁에 와서 가지 하나만 달라고 했다. 오늘 저녁이 제사인데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큰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이것저것 챙겨 주셨던 것 같다. 이렇게 해서라도 자손에게 먹일 수 있으니 좋은 풍습이란 생각이 든다.
껍질만 남긴 남편은 어디로 갔을까. 저세상에서 착하고 참한 여자를 만나 새살림 차리고 즐겁게 지내고 있을까. 그렇게 해서라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 남편 껍질을 보러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으려나. 그나마 껍질이라도 있는 게 다행인가. 행방불명되어 껍질도 못 찾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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