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4. 8. 9. 그 얼굴이 내 얼굴이네

아~ 네모네! 2024. 8. 11. 18:08

그 얼굴이 내 얼굴이네

이현숙

 

  현관 밖에서 무슨 말소리가 들린다. 요즘 엘리베이터 교체공사로 앞집 사람들은 친척 집에 갔는지 통 기척이 없었는데 이상하다. 말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니 앞집 사람들 소리가 아니다. 누가 앞집에 찾아왔나보다 하고 있는데 자꾸 우리 집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돌린다. 뭘 물어보려는가 싶어서 문을 열고 누구시냐고 하니 웬 할머니가 우리 집을 자기 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맨발로 막 들어오려고 한다. 신도 안 신었다. 같이 서 있는 남자는 여기가 아닌가 보다고 한다. 할머니를 잘 아는 남자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는 13층이 자기 집이라고 우긴다. 몇 호냐고 해도 그것도 모르나 보다. 참 난감하다. 그 남자가 나오라고 하자 다시 나갔다.

  조용해져서 갔나보다 했더니 얼마 후 초인종이 울린다. 문을 열어보니 그 할머니다. 이번에는 경찰 두 명과 함께 왔다. 경찰이 이분을 아느냐고 한다. 모른다고 했더니 본 적도 없느냐고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아까도 와서 자기 집이라고 우기고 막 들어오려고 했다고 하니 알았다고 다시는 문을 열어주지 말란다.

  한참이 지난 후 아들네와 저녁 약속이 있어 문을 나서니 그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있다. 요새 엘리베이터 공사로 계단 오르내릴 때 쉬라고 관리실에서 계단에 플라스틱 의자를 놓아두었다. 경찰은 어느 집인지 알아보려고 그랬는지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온다. 할머니에게 가만히 앉아계시라고 하며 오르내린다. 참 경찰도 못 해 먹겠다. 주민등록증 만들 때 지문을 찍었으니까 경찰서에 데리고 가서 할머니 지문을 찍어 조회해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문이 닳아서 안 찍히는 경우도 있다. 두 달 전 유럽 여행하고 올 때 자동 입국 심사를 받으려고 줄을 따라갔다. 공항 여직원이 옆의 줄을 열며 이쪽으로 오라고 한다. 왜 나만 이쪽으로 빼나 궁금했지만 줄을 따라가니 사람이 직접 입국 심사를 하는 곳이다. 거기 서 있는데 같이 줄을 서 있던 여자가 이쪽으로 온다. 왜 오느냐고 했더니 자동 입국 심사에서 지문이 안 찍혀 이리 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여자는 나와 동갑이지만 동안이라 10년은 젊어 보인다. 그래서 공항 직원이 줄에서 이쪽으로 빼지 않았나 보다. 하긴 75년이 넘은 지문이니 지워지는 것도 당연하다.

  할머니는 그 후 얼마나 더 현관 밖 의자에 앉아있었는지, 집은 찾았는지 궁금하다. 그 할머니 얼굴을 보면 내 얼굴이 보인다. 저녁 식사 후 계단을 올라오며 그 할머니가 여태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더니 다행히 없다. 부디 집을 잘 찾았으면 좋겠다. 가족들은 또 얼마나 애를 태웠겠냐 말이다. 핸드폰도 안 가지고 나온 걸 보면 가족들이 실종신고 하기 전에는 찾기 힘들 것 같다.

  멀쩡하게 생긴 할머니가 자기 집도 못 찾는 걸 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 나도 약속장소를 착각해 엉뚱한 곳에서 기다린 적이 있다. 선정릉역으로 오라고 했는데 선릉역으로 가고, 구파발역으로 오라고 했는데 불광역에 가서 기다렸다. 점심 약속을 했는데 깜빡하고 그냥 집에서 밥을 먹다가 왜 안 오느냐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달려간 적도 있다. 갈수록 별별 실수를 다 한다. 앞으로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서 불안하다.

  얼마 전 문학기행 갈 때도 나처럼 이런 실수를 저지른 회원이 있었다. 양재역으로 오라고 했는데 영 안 와서 전화했더니 사당역으로 갔다는 것이다. 출발 시간이 다 되어 우린 그냥 출발했다. 그분은 버스를 타고 논산까지 와서 다시 택시를 타고 점심 식사하는 장소로 왔다. 그러면서 너무 황당하다고 했다. 그분은 나와 동갑이다. 내가 벌써 몇 년 전부터 엉뚱한 곳에서 기다린 적이 있다고 하니 정말이냐고 하며 안심하는 눈치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심하다. 깜빡깜빡할 때마다 치매가 아닌가 걱정된다. 치매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 노인들 5명 중 한 명은 치매라고도 한다. 뇌세포가 매일 매일 죽어 나가니 뇌세포 속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도 점점 사라질 것이다. 뇌의 크기도 점점 작아진다. 한 마디로 골빈당이 되어간다.

  예전에는 평균 수명이 짧아서 치매 환자가 적었을 수도 있다. 이런 뉴스를 볼 때면 오래 살까 봐 은근히 겁이 난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되냐 말이다. 정신도 육체도 건강하게 유지하며 100세가 넘도록 사는 분도 있다. 하지만 그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축복이 아니다. 그저 막연히 나에게도 이런 축복이 왔으면 하고 욕심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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