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따라 하기
이현숙
화장실에 들어갈 때면 겉옷을 문밖에 벗어놓고 들어간다. 이건 남편이 하던 버릇이다. 나는 겉옷까지 입고 들어가 안에서 벗은 후 다 씻은 다음 다시 입고 나온다. 그런데 요즘은 나도 겉옷을 밖에 벗어놓고 들어간다. 남편 따라하기다.
여름이면 남편은 덥다고 러닝셔츠 바람으로 지냈다. 나는 러닝셔츠 위에 겉옷까지 입고 지냈다. 그런데 지난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집에 아무도 없으니 나도 러닝셔츠 바람으로 지내보니 훨씬 시원했다. 남편이 이 맛에 그렇게 벗고 지냈나 보다. 이것도 남편을 따라 하고 있다.
아침 식사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있다. 이것도 남편이 하던 일이다. 그걸 보며 나는 “씹으면서 눈은 왜 감느냐. 눈 감고 씹으면 더 맛있냐?” 하면서 핀잔을 주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눈을 감고 씹고 있었다.
생태찌개를 먹으며 무심코 눈알을 먹고 있다. 남편은 눈알 먹기를 좋아했다. 어쩌다 친정엄마와 식사를 하다가 남편이 생선 눈알을 먹으면 엄마는 질겁을 하며 눈알 먹으면 효도를 못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양가의 부모 다 돌아가셨으니 먹어도 된다고 하며 본인이 얼른 드셨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남편을 따라 하고 있다.
이래서 부부는 닮는다고 하나 보다. 하긴 50년을 함께 한 인간은 남편밖에 없으니 남편 따라 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이 있을 때는 그래도 나름 격식을 차리려 했었다. 이제 독거노인이 되고 보니 도무지 체면 차릴 줄 모른다. 할머니가 되면 눈에 뵈는 게 없어서 막가파가 된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디까지 남편 따라하기를 하려나. 아마도 마지막은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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