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2. 10. 20. 미친 엄마

아~ 네모네! 2022. 11. 18. 21:49

미친 엄마

이현숙

 

  코로나로 꽉 막혀있던 하늘길이 열렸다. 3년 만에 국제선 비행기를 탔다. 이탈리아 북부에서 로마에 있는 베드로 성당까지 가는 베드로 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난 한마디로 미친 엄마다. 남편 간 지 한 달 만에 딸이 뇌출혈로 쓰러져 머리를 열고 수술했다. 아직도 입원 중이다. 동생들 카톡방과 가족 카톡방에 이런 여행이 있는데 가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며느리는 잘됐다고 다녀오시라고 하고 사위도 "그때쯤은 좀 좋아지겠죠." 하며 다녀오시라고 한다. 동생들은 펄쩍 뛰며 "그건 아니죠." "미숙이를 생각해서 다음 기회에 가세요." 한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내 동생이 자기 아이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있는데 해외여행 간다고 하면 " , 너 미쳤냐?" 했을 것이다.

  같이 기자고 한 장미숙 씨도 며칠 더 생각해보라고 한다. 며칠 동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 포기하겠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이미 김 사장님에게 연락했고 같이 룸메이트 할 사람도 정해졌다는 것이다. 잠시 후 김 사장님이 가는 걸로 알고 진행을 하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 후 딸이 한양대병원에서 강남세브란스로 전원을 한다고 해서 4주 만에 처음 딸의 얼굴을 보려고 한양대로 갔다. 이동식 침대에 누운 채 딸이 나온다. 구급차에 실린 딸 옆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얼굴이 파리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딸의 눈가에도 물기가 보인다. 머리칼을 다 밀어버린 딸의 머리에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강남세브란스에 도착하니 휠체어가 다 나가서 없다고 한다. 구급차 기사가 부축해서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혀주고 간다. 의자에 앉아 사위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딸의 머리가 시릴 것 같다. 가방에 있던 모자를 꺼내어 쓰라고 했다. 로비에 앉아 한양대병원 파리바게뜨에서 사 온 빵을 먹고 나니 사위가 온다. 사위는 어디서 구했는지 휠체어를 끌고 온다. 사위가 딸의 겨드랑이를 들고 세운 후 내가 휠체어를 딸의 엉덩이에 밀어 넣어 겨우 앉혔다.

  사위가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간 동안 딸의 옷을 보니 너무 얇다. 춥지 않으냐고 하니 짐에 있는 가디건을 달라고 한다. 짐에는 기저귀가 한 보따리다. 화장실을 못 가니 기저귀를 차고 사나 보다.

  우리 딸은 너무 참는 게 문제인 것 같다. 항상 조용하고 고분고분하다. 평생 속 썩인 적이 없다. 너무 참다가 이렇게 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소리도 버럭버럭 지르고 펄쩍펄쩍 뛰며 화도 냈으면 좋겠다.

  사위가 와서 딸의 휠체어를 밀고 올라갔다. 나는 의자에 앉아 계속 짐을 지켰다. 수속이 복잡한지, 오래 걸린다. 화장실이 급해 옆의 사람에게 짐 좀 봐달라고 하고 화장실로 갔다. 볼일을 보고 거울을 보니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 나는 이 정도도 못 견디고 실핏줄이 터졌는데 뇌의 핏줄이 터진 딸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의자로 돌아와 잠시 기다리니 사위가 온다. 짐을 올려보내고 나는 집으로 왔다.

  딸이 처음에는 카톡도 못 하다가 3주 만에 이모티콘을 올렸다. 아들도 며느리도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갈채를 보낸다. 이모티콘 하나에 온 가족이 감격했다. 이런 와중에 해외여행을 떠난 나는 누가 봐도 미친 엄마다. 너무 심한 나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하나님이 한 방 먹이신 것 같다. 한 방 얻어터지고도 정신을 못 차리는 나는 정말 구제 불능이다. 아무래도 하늘나라에 가면 2탄으로 얻어터질 것 같다. 그저 이런 엄마는 일찌감치 포기하시고 하나님이 엄마가 되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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