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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2023. 5. 23. HAPPY BIRTH DAY TO ME HAPPY BIRTH DAY TO ME 이현숙 75년 만에 난생처음으로 혼자 생일을 맞는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있었고, 결혼 후에는 남편이 있었다. 절간같이 적막한 빈집에서 혼밥 아니 혼빵을 먹으려니 어색하다. 혼자 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HAPPY BIRTH DAY TO ME. HAPPY BIRTH DAY TO ME. HAPPY BIRTH DAY DEAR MY ME. HAPPY BIRTH DAY TO ME.‘ 청승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혼자 축하를 한다. 달력에 써 놓은 ’내 생일‘이란 글씨도 처량해 보인다. 며칠 전 아이들과 외식도 하고 케이크도 자르고 축하금도 받았다. 손자에게 선물도 받고 카드도 받았다. 3번 동생이 준 자른 미역으로 엊저녁에 미역국도 끓여먹었다. 할 건 다 했는데도.. 2023. 5. 25.
2023. 5. 12. 마지막 흔적 마지막 흔적 이현숙 교회에 간다. 본당에 들어가기 전 헌금봉투함을 본다. 남편의 이름이 없어졌다. 지난 일요일까지도 붙어있었는데 9개월 만에 누군가 떼어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계속 붙어있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그런데 이름이 없어지니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다. 남편의 마지막 흔적이 없어진 것 같다. 주민센터에서 사망신고를 하고 나왔을 때보다 더 충격이다. 이 지구상에서 남편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하긴 나 스스로 그 흔적을 지우려고 옷도 신발도 부지런히 내다 버렸다. 그런데 막상 이름이 지워진 걸 보니 가슴 한구석이 쿵 내려앉는 것 같다. 핸드폰에 있는 남편 전화번호도 지운 지 오래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는 지워지지 않는다. 010-3795-6022 이 번호가 아직도 또렷하.. 2023. 5. 19.
2023. 5. 12. 50번째 결혼기념일 50번째 결혼기념일 이현숙 오늘도 혼밥을 먹는다. 절간 같은 적막강산을 깨보려고 핸드폰 라디오를 튼다. “5월 12일 금요일 출발 FM과 함께 이재후입니다.” 뭔가 익숙한 날짜다. 무슨 날인가 하고 식탁 옆의 달력을 본다. 자세히 봐도 아무 날도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혼기념일이다. 예년 같으면 사위가 출근 전에 카톡을 보냈을 것이다. 이제 장인이 없으니 결혼기념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가 좀 어색했나 오늘은 잠잠하다. 우리 사위는 다른 서비스도 잘하지만 특히 맆서비스를 잘한다. 우리 생일 때면 꼬박꼬박 축하 글을 보내고 이모티콘도 보낸다. 결혼기념일에는 “장인 장모님 결혼기념일 축하드립니다. 예쁜 딸을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보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업 된다. 내 딸을 예쁘게 봐주니 이렇게.. 2023. 5. 14.
2023. 5. 8. 웃기는 년 웃기는 년 이현숙 어버이날이다. 날씨도 화창하다. 딸이 꽃바구니도 보내고 며느리가 카네이션 화분도 가져왔다. 손자가 직접 만든 종이 카네이션을 달고 손자와 사진도 찍었다. 아들네와 저녁도 먹었다. 할 건 다 한 것 같은데 가슴 한쪽이 허전하다. 왜일까? 남편이 없어서인가? 달랑 혼자서 맞는 어버이날은 처음이다. 독거노인 생활이 짧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뿐이다. 하는 짓을 보면 정반대다. 눈부시게 화창한 햇빛을 보니 마음이 울적해진다. 어둡고 차디찬 납골당에 들어있는 남편이 생각난다. 유골 가루를 진공포장까지 했으니 얼마나 갑갑할까? 생전 처음 대장내시경 검사를 했다. 용종을 3개 떼어냈는데 모두 선종이라고 한다. 2년 후에 또 해보라고 한다. 힘들지만 해볼 생각이다. 미국에 살던 언니는 대.. 2023. 5. 9.
2023. 5. 5. 채워야할 사랑의 양 채워야할 사랑의 양 이현숙 망우산 자락 데크길을 걷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산 아래 정자에 웬 남자가 혼자 앉아있다. 남편 생각이 난다.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니 쓸쓸해 보인다. 저 사람도 나처럼 부인을 먼저 보내고 혼자 되었을까. 먼저 간 남편이 참 복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내 남편이 이 세상에 홀로 남겨져 저런 모양으로 앉아있다면 그 꼴을 어떻게 볼까. 생각만해도 가슴이 아프다. 남편은 나보다 정이 많고 맘이 약해서 아마 혼자 쩔쩔 매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 한 사람이 당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당하는 게 백번 낫다. 옛말에 부부금슬이 너무 좋으면 일찍 이별한다는 말이 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가지고 있는 사랑을 모두 쏟아버려서 더 이상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일까? 그래서 일찍 가버리는지도 모른다.. 2023. 5. 5.
2023. 4. 27. 씨눈이 내리네 씨눈이 내리네 이현숙 꽃눈이 다 내리고 나니 씨눈이 내린다. 하얀 홀씨가 숲속을 마냥 날아다닌다. 옆으로도 가고 위로도 올라가고 땅으로도 떨어진다. 때아닌 눈이 내린다. 하나의 생명을 품고 공기중을 날아다니다가 한 곳에 안착하면 뿌리를 내린다. 어떤 놈은 나뭇가지에 걸리기도 하고 거미줄에 붙은 것도 있다. 이런 씨들은 이게 제 팔자려니 하고 비가 쏟아질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한다. 재수가 좋으면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자라나서 또 새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아스팔트길에 떨어진 놈은 아마 싹도 내보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사람도 어디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그 팔자가 천차만별이다. 금수저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흙수저로 태어나 평생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고생하는 사람도 있.. 2023.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