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 5. 12. 마지막 흔적

아~ 네모네! 2023. 5. 19. 16:22

마지막 흔적

이현숙

 

  교회에 간다. 본당에 들어가기 전 헌금봉투함을 본다. 남편의 이름이 없어졌다. 지난 일요일까지도 붙어있었는데 9개월 만에 누군가 떼어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계속 붙어있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그런데 이름이 없어지니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다. 남편의 마지막 흔적이 없어진 것 같다.

  주민센터에서 사망신고를 하고 나왔을 때보다 더 충격이다. 이 지구상에서 남편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안타깝다. 하긴 나 스스로 그 흔적을 지우려고 옷도 신발도 부지런히 내다 버렸다. 그런데 막상 이름이 지워진 걸 보니 가슴 한구석이 쿵 내려앉는 것 같다.

  핸드폰에 있는 남편 전화번호도 지운 지 오래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는 지워지지 않는다. 010-3795-6022 이 번호가 아직도 또렷하다. 아들 번호도, 딸 번호도 모르는데 남편 번호만 내 기억에 남아있다.

  집에는 아직도 남편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남편이 신던 슬리퍼도 있고, 남편이 가져온 수건에도 대전고 46회 졸업 50주년 기념이란 글자가 뚜렷하다. 예원학교 근무할 때 받은 수건에도 예원 16년 예고 29주년 1982. 5. 27.’이라고 쓰여있다. 이불도 같이 덮던 이불이고, 소파에도 남편 자리가 공허하다. 그 자리에 앉아 TV 보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사가정시장에서 올라오는 길 신호등 앞에 놓여있는 의자를 볼 때도 남편 모습이 보인다. 시장 보고 같이 올라올 때면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여기 앉아있곤 했다.

  매일 걷던 망우산 길에도 남편 모습이 곳곳에 박혀있다. 동화천 약수터에서 약수물을 지고 올라와 배낭을 두고 쉬던 나무판도 있고, 같이 앉아 보온병의 물을 나눠마시던 데크길 난간도 여전하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지나야 이런 흔적이 모두 사라질까? 치매가 걸리면 깨끗이 지워질까?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이상 죽을 때까지 이 흔적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인간이 이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쉬던 숨이 이 공기 중에 남아있고, 움직이면서 남겨놓은 공기의 흐름이 영원히 전파되고 있을 것이다. 말을 하며 만든 공기의 파동도 계속 전파되고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유전자는 자식의 몸속에 반이 남아있다. 내 몸에는 내 부모의 유전자가 남아있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유전자도 남아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영생이란 이런 방법을 통해 생명을 이어간다는 뜻인가?

어떤 동물도 식물도 이 지구상에 나타난 이상 그 흔적을 영원히 남기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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