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 5. 23. HAPPY BIRTH DAY TO ME

아~ 네모네! 2023. 5. 25. 22:16

HAPPY BIRTH DAY TO ME

이현숙

 

  75년 만에 난생처음으로 혼자 생일을 맞는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형제자매가 있었고, 결혼 후에는 남편이 있었다. 절간같이 적막한 빈집에서 혼밥 아니 혼빵을 먹으려니 어색하다. 혼자 속으로 노래를 부른다.

HAPPY BIRTH DAY TO ME.

HAPPY BIRTH DAY TO ME.

HAPPY BIRTH DAY DEAR MY ME.

HAPPY BIRTH DAY TO ME.‘

청승맞기는 하지만 그래도 혼자 축하를 한다. 달력에 써 놓은 내 생일이란 글씨도 처량해 보인다.

  며칠 전 아이들과 외식도 하고 케이크도 자르고 축하금도 받았다. 손자에게 선물도 받고 카드도 받았다. 3번 동생이 준 자른 미역으로 엊저녁에 미역국도 끓여먹었다. 할 건 다 했는데도 어쩐지 2% 부족하다.

  매주 화요일은 문화센터에서 산에 가는 날이라 빵이나 떡을 먹고 간다. 화요트레킹에 나간 자 올해로 20년째다. 화요일에 내 생일이 돌아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내 환갑날이 마침 화요일에 걸려서 산에서 내려와 환갑잔치를 해주었다. 케이크도 자르고 조연옥 씨가 치마까지 준비해 춤도 추었다.

  “띵 똥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나 동생들 카톡방 소리다.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사위가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오전 6시 조금 지났다. 사위는 일찍 출근한다. 출근 준비가 바쁠 텐데 매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이렇게 축하해주니 고맙다. 잠시 후 며느리, , 마지막으로 아들까지 모두 축하해준다.

  문득 새벽에 꾼 꿈이 생각난다. 남편이 왔다. 얼굴은 안 보이지만 남편이다. 내가 은행에 예약한 시간이 다 되어 서류를 가지고 가야 하는데 안 보여서 남편에게 치웠느냐고 하니 자기는 아무것도 만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게 내가 늘상 해오던 짓이다. 뭔가 잘 안되면 남편에게 뒤집어씌운다. 모처럼 마누라 생일이라고 축하해주러 왔나 본데 또 죄를 뒤집어씌워 쫓아버렸다. 참 대책 없는 마누라다.

  또 띵 똥~” 소리가 난다. 동생들이 축하해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축하해주는 사람이 많은데도 마음이 텅 빈 느낌이다. 다 합쳐도 남편 하나만 못한가 보다.

  배낭을 챙겨 잠실로 간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홍천 가리산으로 간다. 오늘 모처럼 생일이 화요일에 닿았는데 오늘 술을 내가 살까 생각한다. 하지만 곧 마음을 내려놓는다. 남편 죽은 지 1년도 안 됐는데 무슨 낯짝으로 생일을 챙기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지내기로 했다.

  오늘따라 간식을 나눠주는 회원들이 많다. 부대장님이 수제 강정도 주고, 현정섭님이 한라봉 크런치, 박영이님이 PROTEIN 과자, 이명필님이 젤리도 준다. 완전 내 생일잔치 같다. 생일날 혼자 집에서 쓸쓸히 지낼 뻔했는데 회원들과 하루종일 웃고 떠들며 산행도 하고 내려와서 막국수도 먹고 하니 푸짐하고 신나는 생일을 보냈다.

  세상엔 참 과부도 많다. 내가 남편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혼자 되고 보니 세상에 널린 게 과부다. 야쿠르트 아줌마도 내 남편이 하늘나라 갔다고 하니 자기는 혼자 된 지 30년이라고 한다. 20년 동안 이 아줌마에게 야쿠르트 사 먹었는데 그동안은 한 번도 자기가 혼자라는 말을 안 했었다. 새벽기도에 나가는 교회 강 권사님과 김 권사님도 혼자라고 한다. 김 권사님도 남편 간 지 27년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세월이 얼마나 지나야 남편 생각이 안 날지 모르겠다고 하니 눈 감기 전에는 잊지 못할 거라고 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잊혀지지 않나 보다. 내 남편은 아들만 6형제다. 모두 다 죽고 여자들만 남았다.

  홀아비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더니 과부 사정도 과부가 아나 보다. 독거노인이 된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이 사람 저 사람 찰밥도 해주고 장조림도 해준다. 요가를 같이하는 사람이 자기가 담갔다고 고추장을 줬는데 우리 교회 김 권사님이 또 고추장을 준다. 내가 평생 고추장 한 번도 안 담근 줄 아나 보다.

  남편이 있을 때는 혼자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부모 눈치도 안 보고 남편 눈치도 안 보면 맘껏 세상을 훨훨 날아다닐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날갯죽지 떨어진 새가 될 줄은 몰랐다. 간접 경험은 백날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당해봐야 안다. 상처받은 사람만이 참 위로자가 되고 치유자가 될 수 있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상처를 통해 나도 남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성숙한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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