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년
이현숙
어버이날이다. 날씨도 화창하다. 딸이 꽃바구니도 보내고 며느리가 카네이션 화분도 가져왔다. 손자가 직접 만든 종이 카네이션을 달고 손자와 사진도 찍었다. 아들네와 저녁도 먹었다.
할 건 다 한 것 같은데 가슴 한쪽이 허전하다. 왜일까? 남편이 없어서인가? 달랑 혼자서 맞는 어버이날은 처음이다. 독거노인 생활이 짧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뿐이다. 하는 짓을 보면 정반대다.
눈부시게 화창한 햇빛을 보니 마음이 울적해진다. 어둡고 차디찬 납골당에 들어있는 남편이 생각난다. 유골 가루를 진공포장까지 했으니 얼마나 갑갑할까?
생전 처음 대장내시경 검사를 했다. 용종을 3개 떼어냈는데 모두 선종이라고 한다. 2년 후에 또 해보라고 한다. 힘들지만 해볼 생각이다. 미국에 살던 언니는 대장암인 것을 모르고 간까지 전이된 후에 발견하여 결국 53살에 죽었다. 위내시경 검사도 했다. 위염과 식도염이 있다고 한다. 남편은 퇴직 후 13년 동안 건강검진도 안 하고 버티더니 위암 말기에 발견하여 수술도 못 해보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암 진단을 받은지 한 달도 못 살고 갔다. 이런저런 꼴을 보고 나니 겁이 나서 자꾸 검사를 하게 된다.
잇몸이 아파서 치과에 갔다. 치주염이 생겼다고 한다. 이를 뽑아야 한단다. 그런데 골다공증 주사를 맞고 1년 안에 이를 뽑으면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랬다고 1년을 방치하면 옆의 이까지 염증이 번져서 3개를 뽑아야 한다고 나를 보고 선택하란다. 위험을 감수하고 지금 뽑을 것인지, 1년 후에 안전하게 뽑을 것인지. 그러면서 자기 어머니라면 지금 뽑으라고 하겠단다.
6월달에 노르웨이 피요르드 트레킹 예약을 했으니 섣불리 뽑지도 못하겠다. 그러다가 부작용이 생기면 여행도 못 갈 판이니 일단 갔다 와서 상황을 보고 뽑아야겠다. 먹고 살겠다고 발악을 하는 내 모습이 우습다.
아침 식사 후 노니를 먹는다. 며느리가 암에 좋다면서 남편 먹으라고 사 온 건강식품이다. 남편은 이 약을 뜯어보지도 못하고 갔다. 엉뚱하게 내가 먹고 있다.
독거노인 생활 짧게 하고 싶다면서 하는 짓은 천년만년 살 기세다. 빨리 죽고 싶다는 것은 입에 발린 말과 글뿐이다. 어떻게든지 이 세상에 붙어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내 꼬락서니가 참 가관이다. 한마디로 웃기는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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