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 4. 12. 복 많은 년

아~ 네모네! 2023. 4. 14. 16:25

복 많은 년

이현숙

 

  난생처음 대장내시경 검사를 했다. 며칠 전부터 먹지 말라는 음식이 많으니 신경 쓰인다. 전날 저녁부터 굶고 설사약과 물, 이온 음료를 먹어대니 대변이 소변처럼 쏟아진다.

  당일 아침 5시에 일어나 또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물과 설사약을 먹는다. 다 먹으려면 두 시간 이상 걸린다. 또 한바탕 쏟아내고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대장내시경 해봤느냐고 묻는다. 처음이라고 하니 문진표를 보며 누가 대장암 걸렸었느냐고 묻는다. 미국 살던 언니가 대장암이었는데 발견을 못 하고 간까지 전이된 후에 발견하여 결국 폐까지 전이되어 53살에 죽었다고 하니 의사가 나를 다시 쳐다본다. 친자매가 대장암으로 그렇게 일찍 죽었는데 여태 대장내시경을 한 번도 안 했느냐며 너무 늦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한다. 변비가 없냐 설사가 없냐 묻는 것이 대장암을 의심하는 것 같다.

  수면으로 위와 대장내시경 검사를 한 후 진료실로 내려오니 사진을 보여주며 위염이 있고 대장에는 용종이 3개 있는데 두 개는 작고 한 개는 1cm로 크다고 한다. 세 개 다 떼어냈으니 1주일 후에 오라고 한다. 지혈제와 위염약을 1주일 치 지어서 집으로 왔다.

  집에 와 의사가 죽 먹으라는 걸 제대로 못 듣고 흰밥과 두부, 계란찜을 먹었다. 조금 있으니 또 설사가 난다. 검은 변이 나온다. 잠시 후 또 검은 설사가 난다. 출혈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음 날 또 병원에 갔다. 검은 변이 나온다고 하니 붉은 피는 안 나왔느냐고 한다. 안 나왔다고 하니 대장에서 출혈이 있었으면 붉은 피가 나온다고 아마 괜찮을 것 같다고 한다. 약을 먹고 다음 날 변을 보니 색깔이 정상이다. 마음이 한결 놓인다.

  이틀 후 우리 집에서 속회예배를 보았다. 속회예배를 보면 예배 본 집 사람이 점심을 사야 하는데 나는 죽밖에 못 먹으니 외식을 할 수가 없다. 88세나 된 권사님이 비를 맞고 우리 집까지 오셨는데 너무 미안하다. 집에 있는 키위 몇 개 싸드렸다.

  죽을 먹고 났는데 권사님이 전화를 한다. 집에 있느냐고 해서 그렇다고 하니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린다. 문을 열어보니 삶은 감자와 삶은 달걀을 가져왔으니 먹으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감자와 달걀만 내 손에 건네주고 그냥 가신다. 따끈따끈한 것이 집에 가서 바로 삶아 가지고 오셨나 보다. 비가 철철 내리는데 그냥 가시는 걸 보니 마음이 짠하다.

  금요일 저녁에 금향로기도회에 갔다. 누가 뒤에서 살그머니 내 어깨를 잡는다. 돌아보니 한 권사님이 내 옆에 쇼핑백을 놓으며 찰밥과 장조림을 했으니 먹어보란다. 내가 이 권사님에게 용종 떼었다는 소리는 안 했는데 누구에게 들었나 보다. 순간 눈물이 왈칵 솟는다. 이 권사님은 몇 년 전 직장암으로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했다. 나는 그때 기도만 했지 무얼 해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 아들이 매일 새벽 기도회에 나와 기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본인의 기도 덕인지 아들의 기도 덕인지 지금은 완쾌되어 건강하게 교회에 잘 나온다.

  다음 주에 며느리와 손자가 왔다. 며느리가 웬 화분을 들고 들어온다. 이 꽃 보고 힘내라고 사 왔다는 것이다. 무슨 꽃인가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별수국이란다. 손자는 할머니 빨리 나으시라고 하며 나를 꼭 껴안는다.

  지금 죽어도 아무 미련이 없는 독거노인에게 이토록 관심과 사랑을 주는 사람이 많으니 난 참 복 많은 년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앞으로 내가 더 살아봐야 쌀만 축내고 국가 재정만 축내는 존재인데 이토록 잘해주니 그저 모든 사람에게 빚을 지는 느낌이다.

  동생들에게 사진을 올리며 자랑질을 했더니 언니는 인복이 많다고 전생에 우주를 구했나보다고 답글이 올라온다. 전생에 우주는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구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람을 붙여주시는 것 같다. 나처럼 어리버리하고 멍청한 사람일수록 좋은 사람을 많이 보내주신다. 본인이 해결을 못 하니 해결해 줄 만한 사람을 보내주나 보다. 예수님도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했다. 잘 나고 똑똑하고 의로운 사람에게 무슨 예수님이 필요할까 말이다.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예수님이 필요하다. 아마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나처럼 유난히 죄가 많고 병든 사람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 자신에게 복 많은 년이라고 최면을 걸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