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 3. 27. 팔자 좋은 년

아~ 네모네! 2023. 3. 27. 16:46

팔자 좋은 년

이현숙

 

  하늘을 바라본다.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렸다. 슬프다. 용마산 자락길을 걷다보면 개나리도 진달래도 화사하게 피어났다. 진달래도 개나리도 슬퍼보인다. 망우산 정상을 지나 데크길을 걷는다. 부부가 함께 가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부럽다. 나도 작년 봄까지는 저렇게 다녔는데.

  함께 가는 모양을 유심히 바라본다. 어떤 부부는 정겹고 행복해 보인다. 어떤 부부는 포로를 끌고 가는 것 같다. 주로 남자가 앞에 가고 여자가 뒤에 따라갈 때 이런 느낌을 받는다. 그런 여자를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아직도 남편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더 자유롭다고 억지도 부려본다.

  남편이 있을 때는 혼자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부모의 간섭도 없고 남편 눈치도 안 보고 내 멋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세상이 캄캄하고 앞길이 막막하다. 참 사람의 마음은 왜 이다지도 간사한 것일까?

  사람이 태어날 때는 의사와 부모님이 맞아준다. 내가 죽어 저세상에서 새로 태어날 때는 누가 나를 맞아줄까? 예수님과 먼저 간 가족들이 마중 나와 줄까? 남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남편이란 존재는 살아있을 때는 골칫덩어리, 죽어서는 슬픔 덩어리라고 생각했다. 남편이란 살아서도 나를 괴롭히는 존재요 죽어서도 나를 괴롭히는 존재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니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있을 때는 있어서 좋고 없을 때는 없어서 좋은 존재가 남편이란 생각도 든다. 이렇게 생각하니 난 참 팔자 좋은 년이란 생각이 든다.

  용마산자락길을 걸으며 새롭게 피어나는 새순과 오색찬란하게 구름처럼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살아서는 이런 세상을 보니 좋고, 죽으면 남편 곁으로 가니 또 좋다. 정말 나는 팔자 좋은 년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