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 2. 13. 맘 놓고 뀌는 방귀

아~ 네모네! 2023. 2. 19. 15:50

맘 놓고 뀌는 방귀

이현숙

 

  새벽에 갑자기 배가 아프다. 화장실에 가니 물 설사가 좍 좍 쏟아진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와 누워있으니 또 배가 쌀 쌀 아프다. 또 물 쏟듯 쏟아냈다. 연거푸 네 번을 쏟아냈더니 힘이 쫙 빠진다. 속도 메슥거린다. 아침이 오기를 기다려 쏜살같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가다가도 쏟아질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참았다. 하긴 아침밥도 못 먹고 먹은 건 다 쏟아냈으니 잠시 멈췄나 보다.

  장염 약을 지어와서 빈속에 쑤셔 넣었다. 점심때는 죽을 조금 먹고 또 약을 먹었다. 방귀가 나오려고 해서 살짝 뀌려고 했는데 설사가 난다. 팬티를 벗어서 빨고 새로 입었다. 힘이 없어 소파에 누웠다. 또 설사가 나려 해서 일어나려다가 또 물커덩 나왔다. 화장실에 가서 또 물 쏟듯 쏟고 팬티를 빨았다. 세 번을 빨고 나니 안 되겠다 싶어서 팬티에 패드를 붙였다. 생리 끝난 지 25년이나 지났는데 패드를 대려니 한심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날 열 번이 넘게 설사를 했다.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우려니 이불에다 또 실수할까 봐 겁이 난다. 잘못하면 이불까지 다 빨아야 할 것 같다. 요 위에 담요를 깔고 그 위에 수건도 깔았다. 다행히 밤사이에는 실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귀가 나오려고 하면 변기에 앉아서 뀌어야 한다.

  갑자기 남편 생각이 난다. 남편도 방귀를 뀌려면 화장실로 갔다. 잘못하면 방귀 뀌다가 똥이 나온다는 것이다. 갈수록 추해진다. 오죽하면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까지 생겼을까.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나이가 들면 괄약근 조절이 잘 안 돼서 그런지 실변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똥칠할 때까지 살라는 말은 악담 중에서도 악담이다. 치매가 걸려서 자기 똥을 벽에 칠하는 노인도 있다. 이렇게 될 때까지 살까 봐 걱정이다.

  한동안 설사가 나올까 봐 산책도 못 갔다. 산책할 때는 전후좌우 잘 살펴서 아무도 없을 때 뿌웅~ 하고 살짝 뀐다. 어떤 때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뀌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사람이 나타날 때도 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간다.

  독거노인이 되고 나니 집에서는 맘 놓고 뿡뿡 뀐다. 남편이 있을 때는 싱크대에 가서 수돗물을 확 틀고 뀌던가 방에 들어가 살짝 뀌곤 했는데 이젠 거실이고 방이고 가리지 않고 맘대로 뀐다. 맘 놓고 뀌니 편하긴 하다.

  지하철역에서는 시끄러우니 맘 놓고 뀌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좋다. 문득 방귀가 냄새는 있지만 색이 없는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방귀에 색이 있다면 주위 사람들이 다 볼 텐데 어떻게 맘 놓고 방귀를 뀔 수 있을까. 이렇게 만들어준 조물주에게 감사한다.

  며칠 후 설사가 어느 정도 멈춰서 살짝 방귀를 뀌어보니 똥이 안 나온다. 기술적으로 잘 뀌었다. 그래도 뀔 때마다 긴장이 된다. 맘 놓고 방귀를 빵 빵 뀔 때가 언젠가 싶다. 사람은 평소에 자기가 얼마나 큰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 잘 모른다. 맘 놓고 방귀 뀌는 것도 큰 복이다. 모든 것은 잃어봐야 참된 가치를 알 수 있다. 독거노인이 되어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지만 아직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 그저 잃은 것만 생각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을 찾아보며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