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잘하세요
이현숙
동생들과 사패산에 가기로 했다. 5번 동생에게 회룡역 몇 번 출구에서 만나느냐고 카톡을 보냈는데 답이 없다. 5번은 혼자 살고 있으니 카톡을 안 보면 불안하다. 밤에 자다가도 몇 번씩 확인했지만, 여전히 안 본다. 아무래도 핸드폰이 고장 난 것 같아 아침에 일어나 집 전화로 했지만, 뚝 끊어진다. 혼자 있다가 쓰러져 전화도 못 받나보다 하는 생각에 산행을 취소하고 동생 집으로 가봐야 하나 오만 가지 생각이 오락가락한다. 5번 동생은 혈전이 있다고 했는데 혼자 있다가 쓰러졌나보다고 안절부절못한다. 친정엄마도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딸도 얼마 전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다. 4번 동생에게 카톡을 보내 5번이 카톡도 안 보고 전화도 안 받는 게 이상하다고 전화 좀 해보라고 했다.
혹시나 하고 핸드폰 전화를 하니 금방 받는다. 왜 집 전화를 안 받았느냐고 하니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는 게 이모 전화인 줄 알았단다. 왜 내 맘대로 핸드폰 고장이라고 생각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안심하고 설거지를 하려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게 이런 때 쓰는 말인가 보다. 5번 동생은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고 100배나 똘망똘망한데 다 늙어빠진 독거노인이 누굴 걱정하고 있나 모르겠다. 남편이 있을 때는 툭하면 ‘에이~ 썅, 사람이 죽기밖에 더 하겠어?’ 하며 똥배짱을 부렸는데 지금은 기가 폭삭 죽어서 낙엽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놀라 자빠질 지경이다.
부지런히 준비하고 회룡역에 가니 5번 동생이 일찌감치 와서 기다리고 있다. 영하 17도의 강추위에 바람까지 몰아치니 얼굴이 그대로 얼어붙는다. 그래도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사패산 정상까지 갔다 오니 오만 근심이 사라지고 날아갈 듯 상쾌하다. 앞으로 남 걱정은 접어두고 나나 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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