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 2. 11. 죽어서도 남편 노릇?

아~ 네모네! 2023. 2. 12. 18:06

죽어서도 남편 노릇?

이현숙

 

  설 명절이다. 남편이 없으니 선물 들어올 곳도 없다. 어느 날 외출했다 돌아오니 현관 앞에 배가 한 상자 놓여있다. 보낸 사람을 보니 예원학교 선생님이다. 이 분은 지난 추석에도 사과를 보냈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도 종종 보내던 사람이다.

  이 선생님은 고향이 마산인데 결혼을 한다고 하여 남편과 차를 몰고 마산까지 축하해주러 갔었다. 그런데 이 선생님의 아버지가 불치병에 걸렸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다고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했다. 그 후로 내 남편을 아버지처럼 더 따랐던 것 같다. 남편 장례식에 와서도 유난히 서럽게 울었다.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남편이 퇴직하게 되었을 때도 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 생각이 난다. 눈이 유난히 커서 눈물방울도 큰가 보다.

  그는 남편 사후에도 여전히 명절이면 선물을 보낸다. 자꾸 받기가 미안하여 카톡을 보냈다. 잘 받았다 고맙다 이제 교장 선생님 생각은 다 잊어버리고 마음 편히 지내라고 했다.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이 해준 것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라고 카톡이 왔다. 받기만 하려니 면목이 없어서 내 책 한 권을 보냈더니 감사하다고 연락이 왔다.

  냉장고에서 배를 하나씩 꺼내 먹을 때마다 남편 생각이 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죽어서도 남편 노릇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후 예원학교에서 교지가 왔다. 남편이 있을 때는 남편 이름으로 왔는데 이제 내 이름으로 온다. 또 울컥해진다. 남편도 없는데 기억하고 교지를 보내준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애틋하다. 같이 유럽 여행 갔던 신미혜 선생님이 정년퇴직했다는 소식도 있다. 공립학교는 4년마다 옮겨 다녀서 떠돌이 기분이다. 하지만 예원학교는 사립학교라 남편은 여기서 32년 넘게 근무했다. 나도 내가 근무한 학교보다 예원학교가 더 애착이 간다. 나도 남편 따라 32년 동안 예원학교에 드나들었다. 그 학교 직원들과 여행도 많이 다녔다. 매년 교지를 받을 때마다 남편 생각이 날 것 같다.

  사학연금에서 내 통장으로 매달 100만 원 이상씩 따박따박 들어올 때도 남편 생각이 난다. 사실 죽어서도 매달 마누라에게 100만 원 이상씩 용돈 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복이 많은 건지 남편이 복이 많은 건지 모르겠다. 살아있으면 더 좋겠지만 죽어서라도 남편 노릇을 해주니 고맙다. 남편 나이 26살 때부터 75살까지 50년 동안 나에게 와서 남편 노릇 해준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

  사람은 왜 항상 현재 있는 것은 생각 못 하고 없는 것만 생각하며 슬퍼하는지 모르겠다. 자식이 있고 손자가 있는 것도 감사하다. 이 아이들도 남편이 나에게 남겨준 선물이다. 앞으로 없는 것은 잊어버리고 있는 것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감사의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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