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칫솔
이현숙
욕실에 있는 아들의 칫솔을 바라본다. 벌써 10개월째 세면대 컵에 들어있다. 작년 8월에 같이 살고 있는 장모님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세 식구가 모두 우리 집으로 피신을 왔다. 그때 가져온 칫솔이다. 하지만 그 후 아들네 식구가 모두 코로나에 걸려서 다시 자기네 집으로 갔다. 그때 칫솔을 두고 갔다. 다음에 왔을 때 칫솔을 안 가져갔다고 알려주니 그냥 여기다 두고 가끔 오게 되면 쓰겠다고 한다.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 후 우리 집에 와도 별로 쓰지를 않는다. 칫솔 하나 가지고 왜 안 가져가느냐고 자꾸 말하기도 그렇고, 그랬다고 버리기도 뭐해서 그냥 여태 두고 있다.
오늘 아침 문득 생각하니 이 녀석이 일부러 칫솔을 안 가져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혼자 사는데 누가 와서 칫솔이 하나밖에 없는 걸 보면 독거노인인 게 표가 나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하긴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오버하는 건지도 모른다. 아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착각 속에 사는 것일까? 상대방은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을 심각하게 생각하여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이래서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했나 보다.
하긴 맨정신으로 사는 것보다. 이렇게 착각도 하고 오해도 하면서 아웅다웅 살다 보면 이 세상살이가 훨씬 편해질 수도 있다. 오늘도 나는 효자 아들을 두었다고 착각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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