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복숭아
이현숙
시장에 햇복숭아가 나왔다. 발그스름하니 맛있게 생겼다. 일곱 개에 만 팔천 원이다. 좀 비싸다 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욕심에 사가지고 왔다. 씻어서 껍질을 벗기니 술술 잘도 벗겨진다. 갑자기 남편 생각이 난다. 남편은 이렇게 부드럽고 말랑한 백도를 좋아했다.
작년까지는 복숭아를 먹을 수 있었는데 올해는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남편에게도 주고 싶지만 줄 수가 없다. 문득 제사상에는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민간신앙에서 복숭아나무는 귀신이나 재앙을 쫓을 때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니 조상귀신도 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렇게 입에서 살살 녹는 복숭아를 다시는 먹을 수 없는 남편이 측은하다. 제사상에서도 맛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예리한 칼로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느낌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살아서는 소 닭 보듯, 아니 소 쥐 보듯 살았는데 죽어서는 무슨 연인처럼 연연해하는 내 모습이 낯설다. 나는 소띠고 남편은 쥐띠라서 남편은 자기가 소등에 얹혀산다고 했었다. 그런데 죽고 나니 내가 남편 등에 얹혀서 산 것 같다.
그저 뭐든지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맛나게 먹어둬야겠다. 언제 먹지 못할 날이 올지 모르니 말이다.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 모르지만 살아볼수록 먹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인생의 즐거움 중 가장 큰 즐거움은 먹는 즐거움이란 생각도 든다. 확실히 내가 늙기는 늙었나 보다. 먹는 데 이렇게 연연해하니 말이다. 나중에는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미각만 남을지도 모른다. 이 미각마저 사라지기 전에 이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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