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 7. 1. 거미줄 인생

아~ 네모네! 2023. 7. 1. 16:41

거미줄 인생

이현숙

 

  망우산 데크길을 걷는다. 길옆 나무에 거미줄이 걸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참 정교하다. 중심에서 사방으로 방사선 형태의 줄이 있고 이 줄 사이를 빙빙 둘러서 촘촘하게 줄이 처져 있다. 중간중간 날벌레도 달려있다.

  거미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우리 인생을 보는 듯하다. 사방팔방으로 이어진 거미줄에서 거미가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매달릴 수 있듯이 사람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무수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태어나는 순간 부모와의 관계를 맺고 형제자매와도 연결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 많은 관계를 맺게 된다. 아이들이 결혼하면서 사위와 며느리가 생기고 사돈댁과도 관계 줄이 생겼다. 손자 손녀가 태어나면서 또 새로운 줄이 생겼다. 이 관계의 줄이 촘촘하면 촘촘할수록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다면 인간은 외로움 속에서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몸은 멀쩡할지 몰라도 마음은 무저갱으로 떨어지듯 한없이 추락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이 관계의 줄이 점점 줄어든다. 아들이 고1 때부터 시작한 학부모 모임이 있다. 아들이 17살 때부터 올해 48살까지 매달 모였으니 참 오래도 모였다. 그런데 부산으로 이사한 사람, 양주로 이사한 사람, 수원으로 이사한 사람 등 전국 각지로 흩어지다 보니 모이기가 힘들어서 지난 달을 마지막으로 그만 모이기로 했다. 한 가닥 줄이 끊어졌다.

  면목로터리 모임은 면목중학교 있을 때 같이 근무한 사람들이 만든 모임이다. 이 모임도 28년 동안 매달 모이던 모임이다. 역시 멀리 이사한 사람도 있고, 여기저기 아픈 사람도 있다. 거기다 치매에 걸려 수십 년간 모임을 가진 장소를 찾아오지 못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이 모임도 끝냈다. 그냥 카톡만 주고받는다.

  우리의 거미줄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많아지다가 어떤 정점을 찍으면 다시 줄어든다. 혈연으로 이어진 부모와의 줄도 끊어지고 가장 강력한 줄이었던 남편 줄도 끊어졌다. 내게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 자녀와의 줄도 끊어지고 모든 사람과의 관계 줄도 끊어질 것이다. 이 순간 내가 무저갱으로 떨어질지 하늘로 날아올라 갈 것인지 누가 알 것인가? 바라기는 무저갱으로 떨어지지 않고 하늘나라로 훨훨 날아올라 갔으면 좋겠다. 모든 관계의 줄이 다 끊어졌을 때 내 영혼은 참 자유를 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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