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58

2022. 1. 31. 개는 억울해

개는 억울해 이현숙 어려서 경기도 광주군에 있는 큰집에 가면 큰어머니가 개떡을 만들어주었다. 보릿가루에 소금만 넣고 그냥 쪄준 것 같다. 설탕도 이스트도 들어있지 않은 그냥 밀가루 덩어리다. 그래도 그걸 맛있다고 큰 집 뒤쪽에 있는 소막고개 나무 그늘에 앉아서 먹었다. 지금의 떡이나 빵은 그야말로 달콤하고 고소하고 맛깔나는 환상의 맛이다. 색깔도 오색찬란 휘황찬란하다. 개떡은 거무스름하고 칙칙한 누런색이다. 사람들은 별 볼 일 없는 것에 왜 ‘개’ 자를 붙였을까? 개살구는 산에 자생하는 작고 맛없는 살구다. 개복숭아도 크기가 작고 맛도 없다. 꿈도 별 볼 일 없는 꿈은 개꿈이라고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다. 하다못해 똥까지도 개똥은 최하위를 차지하는 것 같다. 욕을 할 때도 소 새끼..

나의 이야기 2022.01.31

2022. 1. 30. 영혼의 흙

영혼의 흙 이현숙 산에 가려고 등산화를 신는다. 끈이 잘 매어지지 않아 쩔쩔맨다. 스패츠도 잘 안 채워지고 배낭도 내 것이 아니다. 내 배낭을 찾느라 허둥댄다. 밖으로 나가니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근처 사람들에게 천호봉이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그리로 가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앞이 안 보여 한참을 우왕좌왕하다가 잠을 깬다. 가슴이 답답하다. 꿈이라서 참 다행이다. 힘든 꿈을 꿀 때는 마음도 힘들고 깨고 나면 몸도 힘들다. 꿈은 현실이 아닌데 왜 괴로울까? 나도 모르게 안간힘을 쓰나 보다. 나의 실체는 꿈속에 있는 나일까 아니면 현실에 있는 나일까? 사람은 영과 육이 합쳐진 존재라고 한다. 죽는 순간 내 영은 내 육신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간다. 모든 생물의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

나의 이야기 2022.01.31

2022. 1. 16. 나이가 무슨 죄?

나이가 무슨 죄? 이현숙 ‘라떼는 말이야~’ 한동안 라떼라는 유행어가 돌아다녔다. ‘나 때는 말이야~’ 하면서 옛날얘기를 끝없이 이어가는 상사의 추억담을 들어야 하는 사원들의 애환을 나타낸 말이다. 그래서 ‘라떼 꼰대’라는 말도 생겨났다. 원래 라떼(latte)는 이탈리아어로 우유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카페라떼는 우유를 넣은 커피를 뜻한다. 꼰대는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신의 경험을 자기보다 지위가 낮거나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을 일컫는 은어로 쓰이게 되었다. 꼰대가 되기 싫어서 꼰대 테스트법, 꼰대가 되지 않는 법 등 별별 내용이 다 돌아다닌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옛 추억에..

나의 이야기 2022.01.17

2022. 1. 12. 나는 징검다리

나는 징검다리 이현숙 아침 식사 후 식탁에 삶은 계란을 한 개 꺼내놓는다. 냉동실에서 떡을 꺼내어 접시에 담아놓는다. 점심때 남편이 먹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가 약속이 있는 날은 남편의 점심을 챙겨놓고 나온다. 며칠씩 여행이라도 가려면 몇 가지 반찬도 만들고 국을 끓여 놓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편의 생활력이 떨어지는지 나에게 의지하는 것이 갈수록 늘어난다. 코로나19로 새벽기도회가 없으니 목사님이 매일 기도문을 교회 카톡방에 올린다. 남편은 눈이 나쁘다는 핑계로 나를 보고 읽으라고 한다. 남편은 오른쪽 눈의 시력이 너무 나빠서 거의 안 보이는 지경이다. 짝눈이 되어서 그런지 길 가다가 넘어지기도 잘하고 술이나 물을 따를 때 보면 옆으로 흘리기도 잘한다. 영상예배를 볼 때도 내가 틀어놓고 함께 듣는다...

나의 이야기 2022.01.14

2022. 1. 7. 가족이 30명?

가족이 30명? 이현숙 손자는 미국에서 태어나 9살 때 한국으로 왔다. 아들이 공부하느라 미국에서 11년을 지내다가 한국으로 왔는데 그곳에 사는 동안 태어나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왔는데 한국에 와서 적응을 못 하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되었다.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채 학교에 갔으니 어리버리한 게 당연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하는 말도 생소한 게 많은지 집에 와서 개새끼가 뭐냐고 묻기도 했다. 과학시험을 보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문제를 해독하느라 반도 못 풀고 25점을 받았다고도 했다. 난감했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오면 아이들이 한국학교에 적응을 못 해 도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결국 아빠는 한국에 남아 직장생활을 하고 엄마와 아이만 미국으로 가서 산다. 교수 ..

나의 이야기 2022.01.08

2022. 1. 1. 내게 기억된 장소 (독후감)

내게 기억된 장소 이현숙 제이콥 필드가 지은 ‘세계사에 기억된 50개의 장소’라는 책을 읽었다. 제이콥 필드는 역사가이자 저술가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현재 캠브리지 대학에서 연구자로 활동 중이다. 세계사에 기억된 50개의 장소가 어딜까 하는 호기심에서 이 책을 선택했다. 책 표지에 있는 피라미드부터 세계 곳곳의 그림이 눈길을 끈다. 그는 선사시대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인류의 이야기를 연대기 순으로 정리했다. 이 책에는 인류 역사에 영향을 준 장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목을 죽 훑어보니 50개의 장소 중 내가 가본 곳은 13개 정도밖에 안 된다. 특히 마지막 장에 있는 비무장지대가 내 눈길을 끈다. 50개 중에 우리나라의 경복궁과 비무장지대까지 두 곳이나 들어있다는 것이 놀랍다. 서..

나의 이야기 2022.01.03

2021. 12. 29. 눈 도화지

눈 도화지 이현숙 밤사이 눈이 살짝 뿌렸다. 별일이 없는 날은 남편과 용마산 자락길을 걷는다. 데크길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눈을 불어버리는 사람들의 기계 소리다. 요새는 낙엽도 쓸지 않고 이 기계로 날려버린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난간에 글씨가 보인다. ‘사랑’이라고 쓰여있다. 과연 사랑은 만국 공통, 만인의 관심사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인가 보다. ‘행복하자’도 보인다. 행복도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단어다. 그런데 행복이란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같은 조건에서 살아도 누구는 행복하고 누구는 불행하다. 행복하고 싶어도 안 되는 걸 어쩌겠는가? 나는 남들이 보면 복 많다고 하는데 죽고 싶은 순간이 참 많았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4번 동생은 나와 별반 다른 삶을 산..

나의 이야기 2021.12.29

2021. 12. 13. 바람칼

바람칼 이현숙 순우리말에 바람칼이란 말이 있다. 이는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개를 이르는 말이다. 생각할수록 기막힌 표현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쩌면 이다지도 신기한 단어를 떠올렸을까? 새의 날개는 말 그대로 바람을 가르는 칼과 같다. 창공을 유유히 나르며 유선형의 날개로 공기를 가른다. 남미에 갔을 때 하늘에 떠서 바람을 가르며 나는 콘도르를 본 적이 있다. 말 그대로 칼이다. 날개 끝이 어찌나 뾰족하게 생겼는지 칼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 사람도 빨리 달리는 사람을 표현할 때 바람같이 빠르다고 한다. 사람도 달릴 때는 바람을 가른다. 성경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는 유대인의 종교적 지도자인 바리새인이다.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낮에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신경 쓰였는지 밤에 왔다. 그리..

나의 이야기 2021.12.13

2021. 12. 11. 내게 묻는 안부

내게 묻는 안부 이현숙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부터 간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들여다본다. 혈색이 어떤가 살핀다. 눈의 실핏줄은 터지지 않았나 눈을 이리저리 굴려본다. 날이 갈수록 추해지는 내 모습이 별로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이에 비해 더 늙어 보인다. 40대부터 할머니 소리를 들었다. 얼마 전 같이 수필 교실 다니는 청일점 문우가 내게 한마디 한다. “80은 넘으셨죠?” 이때는 이분이 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 예봉산에서 내려와 전철을 탔다. 옆에 앉은 아저씨가 한마디 한다. “연세도 있으신데 대단하시네요.” “별로 많지 않아요.” “80은 넘으셨을 것 아녜요.” 이 지경이니 할 말이 없다. 그저 내 모양에 맞게 빨리 나이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

나의 이야기 2021.12.11

2021. 12. 10. 세상이 왜 이래

세상이 왜 이래? 이현숙 나훈아의 노래 중에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라는 것이 있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이 노래의 가사처럼 요즘 세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며느리가 카톡방에 손자의 사진을 올렸다. 밖이 캄캄한데 우리 아파트 앞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는 것이다. 미끄럼틀 위에 선 사진도 올리고 그네 타는 동영상도 올렸다. 지난주 토요일, 손자가 다니던 학교 같은 반 아이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날 우리 ..

나의 이야기 2021.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