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463 2022. 9. 16. 세월이 약일까? 세월이 약일까? 이현숙 새벽에 카톡이 울린다. 무심코 열어보니 사위가 한 것이다. 와이프가 뇌출혈로 아산병원 응급실에 와 있다는 것이다. 순간 이게 무슨 소린가 이해가 안 된다. 와이프가 누구지? 아니 사위의 와이프라면 내 딸인데. 혹시 사위가 뭘 잘못 보냈나 하고 몇 번을 들여다봐도 뇌출혈이란 글자가 분명하다. 한참 후에 한양대병원 중증 응급실로 전원했다는 문자가 온다. 아산병원보다 한양대병원이 더 좋으냐고 하니 아산병원에는 처치할 자리가 없어서 옮겼다는 것이다. 혈관조영 시술을 하고 있는데 머리를 열고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좋게 말해서 머리를 여는 것이지 내 딸의 두개골을 쪼갠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 평소에 통 어디 아프다는 내색도 없었는데 기가 막힌다. 아들 말로는 지난번 만났을.. 2022. 9. 18. 2022. 9. 5. 마지막 온기 마지막 온기 이현숙 “엄마~ 제발~” 손자가 며느리에게 사정사정한다. 오늘 밤 할머니와 셋이서 함께 자자는 것이다. 며느리는 손자가 마구 돌아다니면서 자니까 할머니 잠 못 주무신다고 안 된다고 한다. 손자는 계속 조른다. 결국 셋이서 한 방에서 자기로 했다. 며느리와 손자는 지난 월요일 우리 집으로 왔다. 평소에 외갓집에서 지냈는데 외할머니가 코로나19에 걸렸다는 것이다. 손자의 학교 공부를 마치고 무슨 해외여행이라도 가는 사람들처럼 커다란 트렁크를 질질 끌며 우리 집으로 들어선다. 이틀 밤을 며느리와 둘이 자더니 기어이 셋이 자겠다고 안방에 이부자리를 폈다. 아들은 직장이 대전이라 며느리와 손자만 왔다. 자다 보니 갑자기 손자의 다리가 내 몸에 철썩 올라온다. 팔도 올리고 이리저리 마구 돌아다니며 잔다.. 2022. 9. 7. 2022. 8. 15. 주인 잃은 십자가 주인 잃은 십자가 이현숙 설합장 위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놓여있다. 남편이 매일 이 십자가를 손에 들고 기도하던 것이다. 나무로 만든 이 십자가는 고교 친구 경래가 성지순례 갔다가 사해에서 사 온 것이다. 벽에는 예수상 그림이 있다. 예원학교 제자가 그려준 그림이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한 후로 십자가도 예수상도 할 일을 잃었다. 남편은 7월 13일에 입원하여 8월 9일에 하늘나라로 갔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여 동네 병원에서 물리치료 받고 주사도 맞고 하며 몇 달을 끌었다. 나중에는 병원에 갈 힘도 없다고 하여 119를 불러서 서울의료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폐에 물이 찼다고 입원하라고 한다. 서울의료원은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를 하는 곳이라 보호자는 병실에 들어갈 수가 없다.. 2022. 8. 17. 2022. 7. 20. 똥 찌꺼기라도 똥 찌꺼기라도 이현숙 남편이 서울의료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석 달 전부터 허리가 아프다고 하여 동네병원에 가서 진통소염제도 먹고 물리치료도 했다. 두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어 통증의학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은 후 허리와 목에 주사를 맞았다. 2주일이 지나도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심해진다. 나중에는 병원에 갈 힘도 없다고 하여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폐에 물이 찼다고 입원해야 한단다.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이 절간같이 적막하다. 남편이 누워있던 소파가 텅 비어 허전하다. 화장실에 가면 똥 찌꺼기도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치질이 있어서 그런지 변을 본 후에 샤워기로 닦으면 화장실 바닥에 여기저기 똥 찌꺼기를 흘린다. 세면대 수도꼭지에도 똥을 묻힐 때가 .. 2022. 7. 25. 2022. 6. 29. 이 세상 최고의 축복 이 세상 최고의 축복 이현숙 쌀 씻을 그릇을 베란다 쌀 포대 앞에 갖다 놓고 싱크대에서 한참 찾아 헤맨다. 금방 쌀을 가지러 갔다가 깜빡 잊고는 이게 어디 갔나 하고 머리를 굴린다. 나중에 찾고는 한심하다. ‘이걸 머리라고 달고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냉장고에 캔맥주가 두 개 있었는데 아무리 냉장고를 들여다보아도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남편에게 맥주 한 캔 먹었냐고 했더니 안 먹었단다. 이거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하며 몇 번씩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남편이 열어보더니 “두 개 맞네.” 한다. 한쪽 구석에 있는데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는 게 참 기가 막힌다. 이걸 눈이라고 걸고 다녀야 하나 싶다. 몸도 정신도 갈수록 망가진다. 바위가 풍화되어 먼지로 변하듯 몸도 무너져내리고 마음도 무너져.. 2022. 6. 29. 2022. 6. 27. 동생이 사 온 책 동생이 사 온 책 이현숙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집안이 어려워 겨우 교과서나 사주는 형편이었다. 일곱 남매가 등록금 내기도 빠듯한데 언감생심 참고서 사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이 새벽부터 밤까지 손발이 닳도록 일하는 걸 보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궁리 끝에 학교에서 만든 인형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통영에서 올라온 아저씨가 세 들어 살았다. 그 아저씨는 전복껍질로 나전칠기 문양을 만들어 팔았다. 얇은 전복껍데기를 가는 톱으로 오려 종이에 붙여 여러 가지 그림을 만들었는데 그 솜씨가 기막혔다. 이 아저씨에게 인형을 사라고 했더니 보기에 딱했는지 사주었다. 그 돈으로 참고서를 산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결혼할 때도 이 아저씨가 만든 장롱을 엄.. 2022. 6. 27.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7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