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58

2021. 10. 2. 타칭 할머니

타칭 할머니 이현숙 “할머니, 베틀 바위까지 가세요?” “네.” “정말 대단하시네요.” 동해시에 있는 두타산에 갔다. 두타산에는 지난 6월 10일, 40년 만에 개방된 마천루 코스가 있다. 오늘은 화요트레킹에서 마천루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작년에는 베틀 바위까지만 개방되어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베틀 바위까지만 다녀오려면 약 3km 정도만 걸으면 된다. 마천루까지 간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뭐 이 사람에게 자랑할 일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어쩐지 멋쩍기도 했다. 그 순간 내가 왜 할머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들이 할머니라고 할 때는 아무 느낌이 없는데 60은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할머니라고 하니 어쩐지 어색하다. 혼잣말로 ‘내가 왜 니 할머니냐 이놈아.’ 하고 반문한다. 이날 ..

나의 이야기 2021.10.03

2021. 9. 25. 열받네

열받네 이현숙 가게마다 재난지원금 받는다는 글을 써 붙였다. 코로나19로 정부에서 재난지원금을 1인당 25만 원씩 주었다. 전 국민을 다 주는 건 아니고 건강보험료 내는 기준으로 하위 88%까지 준단다. 우리는 면목동에 껄렁한 집 2채 있다고 건보료를 매달 37만 원씩 낸다. 그런데 28만 원까지만 준다는 것이다. 집은 점점 낡아서 값이 내려가는데 공시지가가 계속 오르니 건보료도 자동으로 오른다. 사가정시장 가게들이 재난지원금도 받는다고 모조리 써 붙였다. 이걸 볼 때마다 공연히 열받는다. 우리는 지역 보험이라 매달 건보료를 무지막지하게 내는 것도 억울한데 지원금도 못 받는다니 어쩐지 배신감 느낀다. 우리가 명실공히 소득이 상위 12%에 든다면 말도 안 한다. 직장 보험 드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부자..

나의 이야기 2021.09.25

2021. 9. 12. 강아지 수준

강아지 수준 이현숙 남편과 용마산 자락길을 걷는다. 모처럼 하늘이 화창하니 정상까지 가보자고 했다. 남편은 종아리가 아파서 못 가겠다고 한다. 밤에 종아리에 쥐가 나서 지금도 아프다는 것이다. 아프다는데 별수 있나 싶어 그냥 뒤에서 천천히 따라간다. 나는 옆의 숲을 바라보며 이것도 찍고 저것도 찍고, 이것도 만져보고 저것도 만져보며 마냥 늦장을 부린다. 요즘 야생화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한 번은 조그마한 꽃에 깨 같은 열매가 붙은 것을 찍어 모까에 올렸더니 들깨풀이란다. 그 후 비슷한 것을 또 찍어서 올렸더니 쥐깨풀이란다. 그 차이를 도저히 모르겠다. 인터넷에 찾아보며 아무리 읽어봐도 모르겠다. 들깨풀에는 털이 많다고 하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잘 보이지 않는다. 맨 위의 잎이 들깨풀은 잎자..

나의 이야기 2021.09.20

2021. 9. 11. 그래 이맛이야

그래, 이 맛이야. 이현숙 몇 달 만에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세 명이 우리 집으로 들어선다. 그동안 낮에는 4명, 6시 이후에는 2명까지만 사적 모임이 허락되어 며느리는 몇 달 동안 오지 못했다. 아들과 손자만 낮에 왔다가 저녁도 못 먹고 6시 전에 부지런히 갔다. 생각할수록 이게 무슨 짓인가 싶다. 9월 6일부터 사적 모임이 6명까지 허용되었다. 그것도 조건이 까다롭다. 6시까지는 백신접종 완료자 2명 + 미완료자 4명이고, 6시 이후에는 백신접종 완료자 4명 + 미완료자 2명이다. 작년부터 웬만한 모임은 모두 스톱 됐다. 인원 제한에 걸려서 만날 수가 없다. 아들은 대전에 근무하기 때문에 주말에만 올라온다. 토요일마다 세 식구가 우리 집에 와 함께 저녁을 먹고 갔다. 손자는 우리 집에 오는 걸 좋..

나의 이야기 2021.09.20

2021. 9. 4. 가장 행복한 부자

가장 행복한 부자 이현숙 “자매분들인가 봐요?” 서울창포원 직원이 우리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작년 12월 나보다 열 살 아래인 5번 동생이 친구와 서울둘레길을 시작했다고 카톡방에 올렸다. 나는 순간 욕심이 생겨서 나도 합류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대환영이란다. 자기는 친구와 1코스를 했지만 나를 위해 다시 1코스를 같이 걸어주겠단다. 이게 웬 떡인가? 나이 70이 넘다 보니 이제 누구에게나 선뜻 따라나서기가 힘들다. 이런 노약자를 누가 데리고 다니겠는가?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런데 동생이 대환영이라고 하니 신이 나서 따라나섰다. 12월 엄동설한에 도봉산역에서 만나 서울창포원 앞으로 가니 여기부터가 1코스 시작이란다. 동생이 가져온 스탬프 북을 열어 1코스 수락 불암산 코스에 도장을..

나의 이야기 2021.09.05

2021.8. 29. 있을 때 잘 하라고?

있을 때 잘 하라고? 이현숙 하와이 사는 지인이 카톡을 보냈다. 새벽에 나와 함께 산에 가는 꿈을 꾸었단다. 그러면서 남편을 이해할 걸, 재밌게 살 껄 하는 후회가 밀려온단다. 이분은 나와 면목중학교에서 같이 근무한 분이다. 집도 우리 동네라서 가끔씩 만나 산에도 가고 가깝게 지냈다. 면목중학교를 떠난 후에도 면목 로터리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달 만나 영화도 보고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10여 년을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남편은 이민 가기 싫다고 하여 혼자 갔다. 친정의 형제·자매가 모두 미국에 있으니 가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을 두고 혼자 간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다. 남편의 간섭이 심하다고 불평이 많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 남편도 아마 놀랐을 ..

나의 이야기 2021.08.30

2021. 8. 25. 남편의 방역수칙

남편의 방역수칙 이현숙 아침부터 수필교실 카톡방에 사진이 올라온다. 문우가 한강 천을 산책하며 찍은 사진이다. 이 길을 걸으며 가끔 만나는 거지가 있는데 몸에서 냄새도 나고 해서 멀리 피해 걸었단다. 그래도 거지가 운동도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곁눈으로 보며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면 눈이 선하게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어떤 젊은 남자가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주는 것을 보았단다. 자기는 상상도 못 한 일인데 이 젊은이를 보니 너무도 훌륭해 보였다고 한다. 나도 이런 상황이면 멀리 피해 다녔을 것이다. 세상이 험하다고, 요즘 젊은 애들은 싸가지가 없다고 종종 뇌까렸는데 알고 보면 세상에는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이 훨씬 많다. 선한 일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 악한 일만 크게 보도를 하니 온 세상이 악해..

나의 이야기 2021.08.25

2021. 8. 9. 매미와 면도기

매미와 면도기 이현숙 면도기 소리가 요란하다.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화장대에 있는 면도기로 이부자리에 앉아 면도를 한다. 나는 조금 더 누워있으려고 이불깃을 당긴다. 면도 소리에 맞춰 매미 소리도 들린다. 둘이서 합창을 하는 듯하다. 요즘은 복중이라 잘 때도 창문을 열어놓고 잔다. 면도기 소리는 매미 소리와 참 흡사하다. 매미는 5년 정도 땅속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땅 위로 올라와 한 달 정도 살고 죽는다. 한 달 동안 부지런히 짝을 찾아 교미해야 한다. 수컷은 교미 후 즉시 죽고, 암컷은 나무에 알을 낳고 죽는다. 한 달 안에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으려면 바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매미는 그토록 밤낮으로 울어대나 보다. 수컷은 울음주머니가 있어서 울지만 암컷은 이것이 없어 울지 않는다. 요즘 산에 다니면 매..

나의 이야기 2021.08.09

2021. 8. 5. 냉수 한 모금의 행복

냉수 한 모금의 행복 이현숙 올여름은 유난히 덥다. 열대야가 2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매일 용마산자락길을 걷는다. 하는 일이라고는 이것뿐인데 이마저 하지 않으면 무기력증에 빠져 헤어나오기 힘들 것 같다. 며칠 전 자락길 입구에 도착하니 조그마한 공터에 웬 냉장고가 보인다. 냉장고 문에는 ‘중랑옹달샘’이라고 쓰고 무더위에 힘들고 지친 분들을 위해 중랑구에서 준비했다고 적혀있다. 이게 웬 떡이냐 싶고 이런 생각을 해준 중랑구청 관계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절로 우러났다. 다른 사람을 위해 1인당 1병만 가져가라는 당부의 글도 쓰여있다. 남편도 한 병, 나도 한 병 꺼내어 손에 들고 사진도 찍었다. 사실 물 한 병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이런 배려를 해준 직원들이 고맙고 행복감이 넘친다. 뭔가 감사..

나의 이야기 2021.08.05

2021. 8. 2. 꿀맛 같은 친구

꿀맛 같은 친구 이현숙 미국 사는 친구가 100달러짜리 수표를 보냈다. 이걸 어떻게 쓸지 몰라 미국서 살다 온 아들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며 어떻게 쓰느냐고 물었다. 은행에 갖다 내면 미국 은행으로 연락해서 받아주는데 수수료가 30~40%나 떼고 서너 달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들이 다시 카톡을 보냈다. 자기의 미국 계좌로 보내면 자기가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zelle을 하느냐고 물어서 한다고 하면 이메일 주소를 보내고 하지 않는다고 하면 계좌번호를 보내라는 것이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는 zelle을 하지 않으니 아들 계좌로 송금하겠다고 한다. 얼마 전 내가 수필집을 냈다고 하니 두 권만 보내달라고 해서 보낸 적있다. 그냥 선물이라고 해도 굳이 우리 주소를 묻더니 ..

나의 이야기 2021.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