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온기
이현숙
“엄마~ 제발~”
손자가 며느리에게 사정사정한다. 오늘 밤 할머니와 셋이서 함께 자자는 것이다. 며느리는 손자가 마구 돌아다니면서 자니까 할머니 잠 못 주무신다고 안 된다고 한다. 손자는 계속 조른다. 결국 셋이서 한 방에서 자기로 했다.
며느리와 손자는 지난 월요일 우리 집으로 왔다. 평소에 외갓집에서 지냈는데 외할머니가 코로나19에 걸렸다는 것이다. 손자의 학교 공부를 마치고 무슨 해외여행이라도 가는 사람들처럼 커다란 트렁크를 질질 끌며 우리 집으로 들어선다. 이틀 밤을 며느리와 둘이 자더니 기어이 셋이 자겠다고 안방에 이부자리를 폈다. 아들은 직장이 대전이라 며느리와 손자만 왔다.
자다 보니 갑자기 손자의 다리가 내 몸에 철썩 올라온다. 팔도 올리고 이리저리 마구 돌아다니며 잔다. 손자의 몸이 내 몸에 닿는 순간 온기가 느껴진다. 실로 오랜만에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를 대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온기인가? 순간 눈에 물이 고인다. 결혼한 지 50년 동안 남편이 코로나 걸렸을 때를 빼고는 각방 쓴 일이 없다.
남편이 7월 13일에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 후에 한 달도 못 되어 하늘나라로 갔다. 병원에 갈 때까지만 해도 집에 못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그것만 고치면 집으로 오려니 생각했다. 응급실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입원해야 한단다. 폐에 물이 찼다고 하며 급성 신부전증이라고 한다. 급성이니까 곧 낫겠지 했다. 그런데 입원하여 정밀검사를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위암 말기인데 척추뼈와 갈비뼈, 폐와 장까지 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절망이다. 척추뼈에 암이 전이 되어 허리가 아픈 걸 모르고 동네 병원 다니며 물리치료 받고 통증의학과에 다니며 허리에 주사를 맞았다. 허리에 파스도 붙이고 소염진통제도 먹었다.
이미 온몸에 암이 퍼진 상태라 속수무책 치료 한 번 제대로 못 받고 갔다. 우리가 간 서울의료원은 간호 간병 통합 병원이라 보호자도 면회가 안 된다. 입원할 때까지 이걸 몰랐다. 가족도 없이 혼자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여기는 호스피스 병동이 없어서 3주 정도 지나서 북부병원으로 옮겼다. 호스피스 병동은 매일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도 대기자가 18명이나 되어 일반 병동에 입원해서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18명이 빨리 죽기를 바라려니 이게 무슨 아이러니한 일인가 싶다. 결국 호스피스 병동에도 못 가보고 일반 병실에서 그냥 가버렸다.
발인하는 날은 폭우가 쏟아졌다. 가족 납골당이 있는 옥천에 유골함을 모시려고 했지만, 비가 너무 심해 가기 힘들다고 해서 화장 후 유골함을 들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TV 옆에 유골함과 영정사진을 놓고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빈집에 유골함과 달랑 앉아 있으려니 기가 막힌다. 손으로 유골함을 쓰다듬어 보니 따뜻하다. 남편이 나에게 주는 마지막 온기인 듯하다. 남편이 집에 한번 오고 싶어서 그렇게 폭우를 쏟아부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 날은 다행히 날이 번쩍 개고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옥천으로 내려가서 납골당에 들어가 유골함을 모셨다. 조상들과 형님들, 동생이 있는 곳에 넣고 문을 닫았다. 납골당 앞 잔디밭에서 간단히 예배를 보고 돌아왔다.
그 후로 계속 혼자서 덩그러니 빈 집에서 잠을 자려니 온 우주가 텅 빈 듯하다. 해도 그대로 뜨고 달도 여전히 떠오른다. 산도 그대로 있고 나무들도 그대로 있다. 남편 친구들도 여전히 있다. 그런데 내 남편만 없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베란다로 들어오는 눈 부신 햇살을 보면 깜깜하고 차디찬 유골함에 들어있는 남편이 생각난다. 얼마나 답답할까?
그동안 잘못한 일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면 또 엄살 부리는구나 하며 “사람이 죽기 밖에 더하겠어?” 하면서 윽박질렀더니 진짜로 죽어버렸다. 남들은 여전히 이 무대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내 남편은 왜 무대 뒤로 사라진 것일까?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어찌하여 이다지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까?
아마도 남편은 손자를 내게 남겨 마지막 온기를 느끼게 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거실 소파에 앉아 만화영화를 보고 있는 손자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74년을 살아오며 부모도, 형제자매도, 아이들도 없이 오롯이 혼자 남겨진 올겨울은 내 생애 가장 추운 겨울이 될 듯하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하와를 만들어주신 것은 서로 온기를 나누라는 뜻이었을까?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 9. 18. 저걸 눈이라고 (2) | 2022.09.19 |
---|---|
2022. 9. 16. 세월이 약일까? (0) | 2022.09.18 |
2022. 8. 15. 주인 잃은 십자가 (1) | 2022.08.17 |
2022. 7. 20. 똥 찌꺼기라도 (0) | 2022.07.25 |
2022. 6. 29. 이 세상 최고의 축복 (0) | 2022.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