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2. 7. 20. 똥 찌꺼기라도

아~ 네모네! 2022. 7. 25. 17:23

똥 찌꺼기라도

이현숙

 

  남편이 서울의료원에 입원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석 달 전부터 허리가 아프다고 하여 동네병원에 가서 진통소염제도 먹고 물리치료도 했다. 두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어 통증의학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은 후 허리와 목에 주사를 맞았다. 2주일이 지나도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심해진다. 나중에는 병원에 갈 힘도 없다고 하여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폐에 물이 찼다고 입원해야 한단다.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이 절간같이 적막하다. 남편이 누워있던 소파가 텅 비어 허전하다. 화장실에 가면 똥 찌꺼기도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치질이 있어서 그런지 변을 본 후에 샤워기로 닦으면 화장실 바닥에 여기저기 똥 찌꺼기를 흘린다. 세면대 수도꼭지에도 똥을 묻힐 때가 있고 샤워기 손잡이에도 묻힐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속을 부글부글 끓이며 속상해한다. 조심해서 닦은 후 여기저기 잘 살피라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지 고쳐지질 않는다.

  요새는 남편이 집에 없으니 깨끗하기는 한데 똥 찌꺼기가 그립다. 그래도 집에서 똥 찌꺼기라도 흘릴 때가 좋았다. 우리에게 언제 이별이 닥칠지 모르는데 천년만년 살 것처럼 서로 구박하고 앙앙거리며 살아온 내가 한심하다.

  남편은 폐에 물이 차서 급성 신부전증으로 입원했는데 검사해보니 척추와 갈비뼈에 암이 있다고 한다. 지금도 폐에서 물을 빼고 있다. 오늘은 척추뼈에 주사기를 꽂아 무슨 검사도 해야 한다고 한다. 그야말로 개고생이다.

  내가 어디 가려고 하면 가지 말라고 발목을 잡을 때마다 남편이 없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남편 없었으면 좋겠다고 입방정은 안 떨었지만 수시로 글방정을 떨었더니 글이 씨가 되는 것이 아닌가 겁이 더럭 난다.

  남편과는 대학교 1학년인 20살 때 만났으니 벌써 55년이 되었다. 어찌 보면 긴 세월이지만 뒤돌아보면 잠깐이다. 앞으로 얼마나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집에 오면 잘해주리라 마음먹지만,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인간의 마음이란 죽 끓듯 해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이 나를 어찌 알랴?

  모든 생물은 생로병사 生老病死의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생로병까지 왔으니 다음 단계는 밖에 남지 않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이 자연의 흐름을 어찌 멈출 수 있단 말인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멈추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남편이 먼저 갈지 내가 먼저 갈지 모르지만 먼저 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도 있다. 요즘 남편이 병상에서 헤매고 있는 걸 보면 이 말이 구구절절 가슴으로 다가온다. 서울의료원은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를 하는 데다 코로나19가 재유행되니 보호자도 면회 금지다. 그동안 잘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잘해주기는커녕 툭하면 면박을 주며 구박했다. 같이 산책할 때 보면 남편은 항상 땅을 보고 걷는다. 그야말로 고개 숙인 남자다. 그 꼴이 보기 싫어 왜 땅만 보고 걷느냐, 무슨 죄지었냐 하면서 구박을 하였다. 같이 있을 때 맘 편하게 해주었더라면 암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좋은 재료로 잘해 먹였으면 건강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마음에 걸린다. 그저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말만 나온다.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때가 되면 이 세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듯, 우리도 때가 되면 저세상으로 가야 한다. 아기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으로 왔듯이 우리도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세상으로 가야 한다. 그날이 오기까지 큰 고통 없이 살다가 편안히 그 문턱을 넘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아기가 이 세상에 올 때도 이렇게 두려워했을까? 아무 기억도 남아있지 않으니 누구도 알 수 없다. 아기는 처음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하나 같이 첫울음을 운다. 아기의 첫울음은 생애 최초로 하는 폐호흡의 시작이라고 한다. 즉 아기가 난생처음 혼자 힘으로 숨을 쉬는 과정이다. 그런데 동물의 왕국 같은 프로를 보면 다른 동물의 새끼는 처음 태어나서도 울지 않는 것 같다. 울지 않고도 첫 호흡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처음 호흡으로 시작한 이 세상의 삶은 마지막 호흡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저세상에서는 육신이 없으니 호흡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저세상이 이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곳인지 알 수 없지만 죽은 사람의 얼굴이 평온해 보이는 걸 보면 아마도 여기보다 편한 세상인 것 같다. 하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 세상이 좋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이것도 믿을 수 없다. 가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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