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2. 6. 27. 동생이 사 온 책

아~ 네모네! 2022. 6. 27. 13:32

동생이 사 온 책

이현숙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집안이 어려워 겨우 교과서나 사주는 형편이었다. 일곱 남매가 등록금 내기도 빠듯한데 언감생심 참고서 사 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이 새벽부터 밤까지 손발이 닳도록 일하는 걸 보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궁리 끝에 학교에서 만든 인형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통영에서 올라온 아저씨가 세 들어 살았다. 그 아저씨는 전복껍질로 나전칠기 문양을 만들어 팔았다. 얇은 전복껍데기를 가는 톱으로 오려 종이에 붙여 여러 가지 그림을 만들었는데 그 솜씨가 기막혔다. 이 아저씨에게 인형을 사라고 했더니 보기에 딱했는지 사주었다. 그 돈으로 참고서를 산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결혼할 때도 이 아저씨가 만든 장롱을 엄마가 사주었는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쓰고 있다.

  그때는 새 책 살 돈이 없어서 주로 청계천에 있는 헌책방에서 책을 샀다. 다 본 후에는 다시 내다 팔았다. 한 번은 동생이 헌책방에서 책을 사 왔는데 어딘지 낯이 익다. 책장을 넘겨보니 내 글씨가 보인다. 내가 판 것을 동생이 모르고 다시 사 온 것이다. 동생에게 직접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7살이나 어린 동생이 그걸 다시 사 올 줄은 몰랐다. 아마 그 책은 책방에서 몇 년을 묵었나 보다.

  예전에는 책이 귀하고 돈도 없어서 애지중지했다. 새 교과서를 받아오면 누런 갱지로 일일이 겉표지를 만들어 씌웠다. 책이 망가질까 봐 조심조심 다루었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차고 넘치는 게 책이다. 글씨를 알기 전부터 온갖 그림책을 마구 사준다. 사방에 책이 널려 온통 도배를 했으니 질려서 책 보고 싶은 마음도 없을 것이다. 교과서는 무료로 국가에서 나눠주고 중학교까지 무상교육이라 학습자료도 공짜로 준다. 참고서도 차고 넘쳐서 책의 홍수가 난 듯하다.

  참고서뿐이 아니다. 문학지도 이 사람 저 사람 주는 사람이 많아 다 읽을 수가 없이 쌓인다. 책을 만들어 남에게 줄 때도 조심스럽다. 무거운 책을 주려면 짐이 될까봐 줘도 되느냐고 미리 물어보고 좋다고 하면 가지고 간다. 이게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책 하나 만들려면 무수한 나무가 베어져야 하고 많은 공해물질을 만들어낼 텐데 말이다. 너무 많으니 귀한 줄도 모른다. 한 줄도 읽히지 못하고 버려지는 책이 어마무시하게 많다. 풍요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닌 듯싶다.

  책 한 권을 보고 또 보고 마르고 닳도록 보다가 자손에게 물려주는 때도 있었다. 모름지기 무엇이든 부족해야 존재가치를 알게 된다. 나부터 쓰잘 데 없는 헛소리 이제 그만해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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