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2. 6. 26. 별난 쇼핑

아~ 네모네! 2022. 6. 27. 12:43

별난 쇼핑

이현숙

 

  현관 앞에 웬 택배가 와 있다. 아무것도 시킨 것이 없는데 이상하다 싶어 일단 가지고 들어와 주소를 보니 우리 집이 맞는다. 보내는 사람 이름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다. 받는 사람 이름도 없고 전화번호도 없다. 정수기 회사에서 보내는 사은품이라고 적혀있다. 우리가 브리타 정수기를 쓰며 필터를 자꾸 사들였더니 아마 선물로 주나보다 하고 봉투를 뜯었더니 바지가 세 개나 들어있다. 깔깔이 바지 두 개에 치마바지 하나다.

  치마바지는 허리가 작아 고무줄을 조금 늘이고, 깔깔이 바지 두 개는 길이가 길어서 세탁소에 맡겼다. 이틀 후 외출했다 돌아오니 남편이 바지값을 물어줬다는 것이다. 16층 아줌마가 와서 자기 딸이 주소를 잘못 써서 바지가 우리 집으로 왔다는 것이다. 남편은 이미 옷에 손을 댔으니 돌려줄 수는 없어서 값이 얼마냐고 물으니 자기 딸에게 전화하여 63천 원이라고 했단다. 할 수 없이 돈을 주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자기네도 잘못이 있는데 그 값을 다 받아 가나 하는 생각이 얼핏 스친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네 것도 아니면서 날로 먹은 우리가 못된 늙은이라고 하겠지?

  하긴 내 멋대로 생각하고 세탁소에 갖다준 내가 잘못이긴 하다. 누굴 탓하랴?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공연히 속이 상한다. 공짜니까 이런 바지 입지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바지통이 넓어 휘 휘 감긴다. 그래도 본전 생각이 나서 울며 겨자 먹기로 가끔 입기는 입는다.

  세상사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진 일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부모도 내가 고른 것이 아니고, 형제도 내가 고른 것이 아니다. 남편도 어찌 보면 내 생각과는 동떨어진 엉뚱한 사람을 만난 듯하다. 내 자식도 내가 원하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것은 아니다.

  오늘도 남편과 함께 교회에 가려고 했지만, 남편이 컨디션이 안 좋다고 포기하는 바람에 혼자 갔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내가 믿고 싶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믿어져야 믿는다.

  우리의 삶은 초월적인 존재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나를 이 세상에 보낸 것도 신의 의지이고, 내 죽음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무리 죽고 싶어도 하늘나라에서 초대장이 오기 전에는 갈 수 없다. 안 가겠다고 발버둥 쳐도 끌려갈 수밖에 없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큰 고생 없이 편안하게 이승의 문턱을 넘고 싶다는 바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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