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십자가
이현숙
설합장 위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놓여있다. 남편이 매일 이 십자가를 손에 들고 기도하던 것이다. 나무로 만든 이 십자가는 고교 친구 경래가 성지순례 갔다가 사해에서 사 온 것이다. 벽에는 예수상 그림이 있다. 예원학교 제자가 그려준 그림이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한 후로 십자가도 예수상도 할 일을 잃었다. 남편은 7월 13일에 입원하여 8월 9일에 하늘나라로 갔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여 동네 병원에서 물리치료 받고 주사도 맞고 하며 몇 달을 끌었다. 나중에는 병원에 갈 힘도 없다고 하여 119를 불러서 서울의료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더니 폐에 물이 찼다고 입원하라고 한다.
서울의료원은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를 하는 곳이라 보호자는 병실에 들어갈 수가 없다. 당연히 면회도 안 된다. 입원하여 이런저런 검사를 하니 위암 4기에 척추뼈와 갈비뼈, 폐와 장에도 전이 됐다고 한다. 이미 온몸으로 퍼졌으니 수술도 못 한다. 그저 침대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아침저녁 전화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남편의 목소리는 나날이 힘이 없어진다. 곁에서 볼 수 없으니 병실에 혼자 누워있는 남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리다.
서울의료원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없어서 양원역 근처에 있는 서울 북부병원으로 옮겼다. 옮기는 날 겨우 얼굴을 보았다. 얼굴이 반쪽으로 변했다. 죽도 잘 못 먹는 데다 허구한 날 검사 받느라고 힘들었나 보다. 북부병원은 호스피스 병동은 있는데 대기자가 18명이라 한 달 졍도 기다려야 한단다. 호스피스 병동은 매일 면회가 가능하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18명이 죽어야 그리로 옮길 수 있으니 이게 무슨 아이러니한 일인가? 내 남편 얼굴좀 보겠다고 남들이 죽어나가길 바라고 있으니 생각할수록 기막힌 일이다.
북부병원도 간호 간병 통합 서비스다. 당연히 면회가 안 된다. 코로나가 정말 사람 잡는다. 병이 점점 위중해지자 면회를 시켜준다. 그것도 두 명만 가능하다. 며느리와 함께 면회를 갔다. 손톱이 길어 손톱깎이를 가져가 손톱을 깎아주었다.
8월 3일에 북부병원으로 옮겼는데 7일 밤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다. 택시를 타고 간다는 것이 기사에게 서울의료원으로 가자고 했다. 며칠 전 북부병원으로 옮긴 걸 깜빡했다. 서울의료원 건물을 보자 병원을 옮겼다는 생각이 났다. 기사에게 미안하다고 하며 북부병원으로 다시 가자고 했다. 밤 12시가 다 되어 병실로 들어가니 남편은 의식이 없다.
다음 날 아침 의사가 가족들을 부르라고 한다. 대전에 있는 아들과 잠실 사는 딸, 사위 모두 불렀다. 다섯 명이 모두 침대 옆에 있을 수 없으니 교대로 휴게실에 가 있다가 침대로 왔다. 8일 밤을 무사히 넘겼다. 혈압은 60 정도밖에 안 된다. 9일 새벽 5시에 호흡이 멈췄다. 혈압은 측정 불가라 숫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맥박을 그리는 선이 서서히 직선으로 변한다. 남편은 눈을 뜬 채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남편은 육신을 떠나는 순간 무엇을 보았을까?
의사가 와서 운명하셨다고 하며 눈을 감겨준다. 간호사가 와서 우리 보고 잠시 밖으로 나가라고 하더니 몸에 있는 줄을 다 빼준다. 산소호흡을 위해 코를 덮고 있던 줄도 빼고, 오줌을 빼던 줄과 폐의 물을 빼던 줄도 다 뺐다. 팔에 꽂았던 주사기도 다 뺐다. 이렇게 많은 줄을 몸에 꽂고 있었느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모든 것을 내려놓은 남편의 얼굴이 평화로워 보인다. 이생의 모든 짐을 내려놓으니 홀가분한가 보다.
남편은 하늘나라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비록 나무 십자가는 손에 들지 못해도, 예수상은 못 봐도 실제 예수님 앞에서 여전히 기도할 것이다. 남편의 체취가 남아있는 이 십자가는 내가 죽는 날까지 버리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질 마지막 십자가는 아마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것인 듯하다. 남편이 남고 내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면 마음 약한 남편은 도저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남고 남편이 먼저 안식에 들어간 것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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