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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63

2022. 6. 11. DNA의 명령 DNA의 명령 이현숙 용마산자락길을 걷는다. 데크로 된 쉼터에 모기장이 처져 있다. 모기장 위에 양산이 두 개 걸려있다. 모기장 앞에는 어른 신 하나와 어린아이 신 두 켤레가 놓여있다. 하나는 분홍색이고 하나는 파란색이다. 양산도 한 개는 분홍색, 한 개는 파란색이다. 안을 들여다보니 두 아이가 정신없이 자고 있다.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연신 부채질을 한다. 한 명은 손자고 한 명은 손녀인가보다. 손자들이 벌레에 물릴까 봐 모기장까지 가지고 와서 낮잠을 재우는 할머니의 정성이 지극하다. 본인도 더울 텐데 아이들만 부쳐주고 있다. 내리사랑이란 말이 맞는 듯하다. 이 사랑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일까? 혹시 DNA의 명령은 아닐까? 자신의 유전자를 25% 가지고 있는 이 아이들을 보호해서 자신의 유전자를 이 지.. 2022. 6. 11.
2022. 6. 10. 마지막 숙제 마지막 숙제 이현숙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만 하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니 스스로 내는 숙제가 많아졌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대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들이 대학교에 가니 결혼까지는 시키는 것이 나의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부모님을 먼저 보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 앞에 죽는 것은 가장 큰 불효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가의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으니 이 숙제도 무사히 마쳤다. 이제 모든 숙제를 다 했다고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다. 허구한 날 아프다고 병원을 들락거리는 남편을 보니 아직도 못다 한 숙제가 있다. 죽지도 않으면서 맨날 죽겠다고 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면 나도 죽을 판이다. 식탁 옆 벽에는 온갖 약들이 도열해있다. 고혈압약, 고지혈증약,.. 2022. 6. 10.
2022. 5. 19. 하늘의 미소 하늘의 미소 이현숙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있었다. ‘오전 11시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작으로 윤 대통령의 취임 선서가 있은 후 취임 연설이 시작되는 시각에 많은 사람들의 환호가 있어 뒤를 돌아 하늘을 보니 거꾸로 선 무지개가 선명히 드러났다. 기상학이 전공인 저에게는 놀라운 일입니다. 드물게 나타나는 높은 구름에만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세계기상기구(WMO)에서 천정호(Circumzenithal Arc)라 학명을 붙였고, 중세시대에 인류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그리고 좋은 행운을 가져다줄 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하늘의 미소“라 명명된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가 끝날 무렵 말끔히 사라진 것입니다. 하늘이 대한민국에 행운을 안기는 것인지 아니면 윤석렬 대통령이 운이 좋.. 2022. 5. 29.
2022. 5. 18. 세상 최고의 남편 세상 최고의 남편 이현숙 고교 동창생들이 반모임을 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도 고교 시절처럼 수다가 한창이다. 한 친구가 자기 남편은 주말부부인데 집에 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컴퓨터와 책만 본다고 투정이다. 나는 내심 내 남편도 컴퓨터나 책이라도 봤으면 하고 생각한다. 하루종일 소파에 눈 감고 앉아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면 속이 터진다. 한 친구는 남편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부인 방을 살그머니 들여다보고 자고 있으면 혼자 요리해서 아침을 먹는단다. 자신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 것 같아 서운하단다. 나는 또 속으로 내 남편도 혼자 요리좀 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우리 집 삼식이 새끼는 요리할 생각은 꿈에도 안 하고 내가 없으면 밥도 하기 싫어 햇반 사다 먹는다. 10년 전 남편이 먼저 간 친구는 묵묵부.. 2022. 5. 29.
2022. 4. 20.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 이현숙 어제 남편과 코로나19 PCR 검사를 했다. 오늘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한다. 오늘 지인들과 남산에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못 간다고 하기가 뭐해서 그냥 나왔다. 가다가 확진 판정 문자가 오면 되돌아가리라 작심하고 일단 나온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기다리는데 문자가 온다. 음성이라는 것이다. 안심하고 전철에 올랐다. 남편에게도 연락이 왔느냐고 물으니 아직 안 왔단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잠시 후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자기는 확진되었다고 한다. 재수가 없으면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3년 만에 처음 외식했는데 직통으로 걸렸다. 남편은 코로나가 유행되기 시작한 후 전혀 외식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나오라고 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두문불출하였.. 2022. 4. 21.
2022. 4. 18. 피눈물 나네 피눈물 나네 이현숙 눈을 깜빡일 때마다 눈에 돌이 들어간 것처럼 까슬까슬하니 아프다. 눈이 충혈되고 눈물이 질질 난다. 안과에 갔다. 의사가 내 눈을 찍은 화면을 보여준다. 노란 알갱이가 아래쪽 눈꺼풀 안쪽에 있다. 결석이란다. 신장에 결석이 생겼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눈에도 결석이 생기는 줄은 몰랐다. 눈꺼풀을 까뒤집고 결석을 잘라낸다. 작년에도 잘라내고 올해 초에도 잘라냈는데 3개월 만에 또 생겼다. 이번에는 4개나 떼어내느라고 한참 걸린다. 잘라낼 때마다 아파서 눈물이 찔끔찔끔 난다. 휴지로 닦아내니 피눈물이 묻어난다. 피눈물이 흘러 마스크까지 젖는다. 피눈물이란 마음속으로 흘리는 줄 알았더니 실제 상황에서도 피눈물이 난다. 우리가 살면서 눈물 없이 살 수는 없다. 슬퍼서도 울고 기뻐서도 울고 아파.. 2022. 4.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