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최고의 남편
이현숙
고교 동창생들이 반모임을 하였다. 오랜만에 만나도 고교 시절처럼 수다가 한창이다. 한 친구가 자기 남편은 주말부부인데 집에 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컴퓨터와 책만 본다고 투정이다. 나는 내심 내 남편도 컴퓨터나 책이라도 봤으면 하고 생각한다. 하루종일 소파에 눈 감고 앉아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면 속이 터진다.
한 친구는 남편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부인 방을 살그머니 들여다보고 자고 있으면 혼자 요리해서 아침을 먹는단다. 자신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 것 같아 서운하단다. 나는 또 속으로 내 남편도 혼자 요리좀 해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우리 집 삼식이 새끼는 요리할 생각은 꿈에도 안 하고 내가 없으면 밥도 하기 싫어 햇반 사다 먹는다.
10년 전 남편이 먼저 간 친구는 묵묵부답으로 듣고 있다가 자기는 남편이 그냥 있기만 해도 좋겠단다. 빈집에 인기척이라곤 없으니 방에는 라디오 틀어놓고 거실엔 TV 틀어놓고 산단다.
같이 수필 공부하는 지인 중에 80살이 넘은 분이 있었다. 말로도 글로도 남편에 대한 불평이 차고 넘쳤다. 남편이 얼마 전 암으로 돌아가셨다. 우리는 그토록 울분을 토해내던 상대가 죽었으니 얼굴이 확 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우리를 만날 때마다 툭하면 울음보가 터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기 남편이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판소리 가사에서는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 상황에서는 이리 보아도 내 웬수, 저리 보아도 철천지 웬수처럼 산다.
아마도 세상 최고의 남편은 내 남편이 아닌 남의 남편이고, 이 세상 남편이 아닌 저 세상 남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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