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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2. 4. 20.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

by 아~ 네모네! 2022. 4. 21.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

이현숙

 

  어제 남편과 코로나19 PCR 검사를 했다. 오늘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한다. 오늘 지인들과 남산에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못 간다고 하기가 뭐해서 그냥 나왔다. 가다가 확진 판정 문자가 오면 되돌아가리라 작심하고 일단 나온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기다리는데 문자가 온다. 음성이라는 것이다.      안심하고 전철에 올랐다. 남편에게도 연락이 왔느냐고 물으니 아직 안 왔단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잠시 후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자기는 확진되었다고 한다. 재수가 없으면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3년 만에 처음 외식했는데 직통으로 걸렸다.

  남편은 코로나가 유행되기 시작한 후 전혀 외식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나오라고 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두문불출하였다. 그런데 친구들이 사가정역까지 올 테니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갔다. 3년 만에 처음으로 일식집에 가서 여섯 명이 회식을 했다. 그중 두 명은 이미 확진 받은 후 나았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남편의 목이 콱 잠겼다. 기침도 한다. 그런데도 코로나 생각을 못 하고 감기에 걸렸나 했다. 이틀이 지나도 여전하다. 내가 한 번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는 게 어떠냐고 하니 본인도 걱정이 되었는지 다음 날 가보겠다고 한다.

  혼자 보내기가 안쓰러워 나도 같이 가서 검사를 받았다. 구청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는데 사람이 없어 논스톱으로 받았다. 요새는 신속 항원 검사는 동네 의원에서만 하고 보건소에서 하지 않으니 사람이 별로 없다. 전에는 몇 시간씩 추위에 떨며 기다렸다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신분증 확인을 하더니 70세가 넘어서 무료다. 참 대한민국 좋은 나라다. 콧구멍 안 쑤시고 지나가나 했더니 막판에 걸려들었다.

  검사소 안으로 들어가니 검사원은 차단막 뒤편에 있고 긴 비닐장갑만 앞으로 나와 있다. 고개를 뒤로 젖히라고 하더니 콧구멍 깊숙이 면봉을 밀어 넣는다. 조금 아프긴 하지만 견딜만하다. 다음 날까지 결과를 기다리려니 초조하다. 마치 중죄인이 판결을 기다리는 기분이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엉킨다. 동대입구역에서 내려 신라호텔 뒤로 들어가 데크길을 걷는다. 봄이 무르익었다. 각종 나무와 풀이 화려한 몸매를 자랑한다. 남산공원은 말 그대로 꽃 잔치다. 남산 둘레길을 걸어 이태원까지 갔다.

  한 지인의 집이 이태원이라 그 집으로 들어가 햄버거도 사다 먹고 잘 놀다 왔다. 그들에게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남편이 확진이라고 하면 얼마나 불안하겠나 싶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좀 미안하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음성이고 아직 아무 증상이 없으니 이들에게 전염될 것 같지는 않다.

  집에 오니 남편은 난감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있다. 보건소에서 전화가 와서 동네 의원에 가 약을 지어왔다고 했다. 동거인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나에게도 문자로 연락이 왔다. 확진자의 검사일로부터 1~3일 후에 검사를 받고, 6~7일 후에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남편이 부인은 자기와 같이 검사를 받아 음성이 나왔다고 했지만 잠복기가 있으니 다시 검사를 받으라는 것이다. 그날이 토요일이라 월요일 아침 혼자서 보건소에 다시 갔다. 어째 왔느냐고 하여 남편이 확진되었다고 하니 군말 없이 다시 검사해준다.

  내일 확진 판정이 나오면 둘 다 일주일간 집에서 나올 수 없으니 오는 길에 미장원에 들러 커트도 했다. 시장에 들러 쌀도 사고 그 밖에 필요한 물건도 이것저것 사 왔다. 미장원에 앉아있는데 남편이 카톡을 한다. 약국에서 체온계를 사 오라고 한다. 열이 나나 걱정이 되어 체온계를 사가지고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열이 나느냐고 물으니 아니란다. 그냥 걱정되어 사 오라고 했나 보다.

  또 다음 날까지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가 되었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잠잘 때는 다른 방에 가서 잤다. 결혼한 지 50년 만에 각방 쓰기는 처음이다. 집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남편은 혼자 코로나 안 걸리려고 집에서도 마스크 쓰느냐고 한다. 자기가 마스크를 써야 하는데 자신은 멀쩡히 맨얼굴로 살고 내가 써야 한다니 이게 무슨 일이냐 말이다. 그래도 아쉬운 건 나니 어쩔 수 없다. 밥은 같이 먹어도 최대한 지킬 것은 지켜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남편은 아이들 카톡방에 자기가 확진되었으니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올렸다. 아이들은 걱정이 되어 괜찮으냐고 연일 문자를 한다. 이거 참 보통 일이 아니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린다. 보건소 직원이라 한다. 현관 밖으로 나가니 봉투를 바닥에 놓고 간다. 잠시 후 전화로 확진자에게 필요한 물건이니 열어보라고 한다. 열어보니 해열제와 주의사항을 적은 종이, 체온계가 들어있다. 조금만 참았으면 될 것을 괜히 거금 9천 원 주고 체온계를 사 왔다. 남편은 열도 안 나면서 공연히 열이 날까 봐 조바심이 나서 체온계를 사 오라고 한 것이다.

  이번 주일은 부활절이다. 가능하면 흰옷을 입고 오라고 해서 흰옷까지 준비해 놓았는데 집에서 영상예배를 봐야 한다. 목사님께 미리 카톡을 보냈다. 남편이 확진되어 집에서 예배드리겠다고 하니 조리 잘하라면서 기도하시겠다고 한다.

  남편은 자가 격리해야 하지만 나는 나가도 되니 혼자 산책하러 나갔다. 집 앞이 용마산이라 차 탈 일도 없고 산책하기는 딱 좋다. 용마산 자락길은 데크가 깔려있어 걷기 좋지만 사람이 많다. 나는 일부러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샛길로 올라가 헬기장에서 능선을 따라 깔딱고개로 내려왔다.

  자락길을 걸으면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있어 내가 혼자 가면 분명히 왜 혼자 왔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남편이 확진이라고 말하기 싫어서 사람 없는 길로만 다닌다. 아무도 안 만나고 아파트 앞까지 왔는데 앞에서 우리 라인 6층 부부가 걸어간다. 이분들도 매일 데크길을 걷는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면 왜 혼자 왔느냐고 물을 것이다. 일부러 밖에서 한참 있다가 그 사람들이 다 올라간 후에 아파트로 들어왔다. 중죄인이 된 기분이다.

  경비실 아저씨도 우리 부부가 매일 산책하는 걸 보아왔기 때문에 만나면 물을 것 같아서 경비실 앞으로 나가지 않고 관리실 앞으로 돌아나간다. 참 불편하다. 매주 다니는 문화센터 트레킹도 못 가고 수필 교실도 못 간다. 혼자 할 수 있는 산책만 하려니 심심하기는 하다.

  나는 내일 또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데 다시 코를 쑤시고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연방 콧구멍을 쑤시려니 도대체 PCR검사가 뭔지 궁금하여 인터넷을 뒤져 봤다.

  PCRPolymerase Chain Reaction의 약자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중합효소연쇄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PCR 검사는 해당 질병이 의심되는 환자의 침이나 가래 등으로부터 RNA를 채취해서 실제 감염된 환자의 RNA와 비교하여 RNA가 일정 비율 이상 일치하는 경우에 양성으로 판정을 하는 방법이다. 참 현대 의학 기술이 놀랍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온 인류의 발목을 잡는다. 이런 세상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발 무죄 판결이 나오기만 바랄 뿐이다. 코로나 확진 환자는 죄 없는 죄인이다. 어서 빨리 이 시기가 지나가길 빌어본다. 하지만 먼 훗날이 되면 이것도 하나의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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