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58

2020. 8. 3 착한 바이러스

착한 바이러스 이현숙 옛날에 한 고승이 어떤 마을의 제일 큰 부잣집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할아버지 죽고, 아들 죽고, 손자 죽으시오~.” 하였다. 집안 식구들이 깜짝 놀라 시주도 안 하고 욕을 하며 내쫓으려하자 노승이 “이런 축복이 어디 있다고 이러시오?” 하며 할아버지, 아들, 손자의 순서대로 죽어야하지 반대로 손자, 아들, 할아버지 순으로 죽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했다. 그 말을 들어본 즉 정말 가장 큰 축복이었다. 그래서 노승에게 시주를 푸짐하게 하고 융숭하게 대접을 하여 보냈다고 한다. 작년 말부터 코로나19가 번지기 시작하여 열 달 가까이 되었다. 모든 모임이 사라지고 해외여행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한 번 나가면 그 나라에서 받아준다고 해도 2주간 격리, 여행 후 한국에 돌아오면 또 2주..

나의 이야기 2020.08.05

2020. 7. 24. 닫혀진 꽃잎

닫혀진 꽃잎 이현숙 방안에서는 파티가 열리고 있다. 두 아이가 창밖에서 몰래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한 바탕 발레 춤이 끝나고 한 여인이 피아노 앞에 앉는다. 피아노가 부서져라 영혼이 떠나갈 듯 건반을 두드려댄다. 그 여인의 숨이 멎고 그녀를 보는 나도 숨이 멎는다. 두 아이는 넋을 잃고 바라본다. 갑자기 큰 개가 맹렬히 짖으며 그 아이들에게 달려든다. 두 아이는 겁에 질려 다시 담을 넘어 달아난다. 남자 아이는 담을 넘었는데 여자아이는 담에 매달린 순간 그 개가 치마를 물어 끌어당기는 바람에 다시 떨어지고 만다. 집 안에서 놀란 사람들이 몰려나와 여자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남자 아이는 담 밖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힘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이 장면은 내 뇌리에 새겨..

나의 이야기 2020.07.27

2020. 7. 20. 가짜가 만든 진짜

가짜가 만든 진짜 이현숙 남편과 자주 가던 일식집이 있었다. 그 사장님은 남편을 김박사님이라고 부른다. 사실 남편의 학력은 학사에 불과하다. 김박사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뭔가 거북하다. 일일이 그게 아니라고 부정을 하기도 그렇고 가만히 있자니 사기를 치는 기분이다. 물론 그 사장님도 남편이 박사가 아닌 줄 안다. 하지만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이 사장님이 우리 집 근처에서 개업을 했다. 남편은 우리는 집에 자주 갔다. 우리 아이들이 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이 사장님은 김밥을 싸서 아침에 우리 집으로 가져다주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하는 나를 위한 배려다. 언젠가 이 사장님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병원에 문병을 갔다. 목에 깁스를 하고 누워있는 그를 보자 마음..

나의 이야기 2020.07.26

2020. 7. 4. 잡초와 화초

잡초와 화초 이현숙 용마산 자락길을 걷는다. 코로나19로 요가도 못 하니 그저 걷는 운동만 한다. 데크길 옆에 며느리배꼽이 눈에 띈다. 며느리배꼽은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한데 잎의 모양이 약간 다르다. 며느리밑씻개는 잎이 좀 길쭉한 삼각형인데 며느리배꼽은 정삼각형에 가깝다. 두 개 다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며느리밑씻개는 이름에서 보는 것처럼 고부간의 갈등이 이름으로 나타난 식물이다. 옛날에는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었다. 귀한 종이를 어떻게 화장실에 쓰겠는가? 그때는 새끼줄이나 부드러운 나뭇잎, 풀들을 베다가 화장실에 놓아두고 볼일을 본 후 뒤처리용으로 사용했다. 하긴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큰댁에 가면 뒷간에 볏짚을 놓아두고 종이대신 썼다. 그런 시절 시어머니가 기분 좋게 화장실용 풀들을 베다가 놓아..

나의 이야기 2020.07.13

2020. 6. 29.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이현숙 해마다 한 해에 한 번씩은 해외여행에 다녀왔다. 이번 8월에도 노르웨이 트레킹을 가려고 작년부터 계획을 세우고 항공권을 구입했다. 남편은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니 빨리 취소하라고 성화다. 나는 내가 먼저 취소할 수는 없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노르웨이에서 한국인들의 입국을 불허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대한항공은 취소하자 곧 환불이 되었는데 유럽 내에서 이동하려던 항공권은 그대로 날렸다. 거금 80만원이다. 정부지원금은 60만원 밖에 못 받았는데 손해가 막심하다. 3월에는 동생들과 남도여행을 가기로 했다. 남편은 나라에서 여행 다니지 말라는데 무슨 여행이냐고 또 보챈다. 나는 사람이 죽기 밖에 더 하겠느냐고 고집을 부렸다. 남편..

나의 이야기 2020.07.13

2020. 6. 28. 눈물총이라도 쏠 걸

눈물총이라도 쏠 걸 이현숙 네델란드의 디자인 아카데미 에인트호반 졸업식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졸업생이 자신을 괴롭혔던 한 교수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알고 보니 이 총은 눈물을 탄환으로 사용한 총이었다. 총을 쏜 학생은 대만 출신의 천이페이였다. 그가 눈물로 탄환을 만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디자인 석사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그가 겪은 심한 좌절감과 모멸감이 이런 일을 하게했다. 동양 문화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천에게 교수는 권위 그 자체였다. 교수가 과제를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심한 비난을 퍼부어도 천은 속만 끓일 뿐 일언반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문화적 장벽과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끙끙 앓기만 했다. 급기야 동료학생들이 그를 위해 교수에게 항의를 ..

나의 이야기 2020.07.03

2020. 6. 23. 독약인가 보약인가

독약인가 보약인가? 이현숙 젊어서는 남편이 허구한 날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도대체 술은 어떤 웬수같은 인간이 만들었나 생각했다. 그런데 술은 원숭이가 처음 발견하였다는 설이 있다. 원숭이가 숲에서 뭔가를 마시고는 비틀비틀 하기에 가보니 웬 액체가 있어서 맛을 보았더니 맛이 기막혀서 사람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일이 떨어져 자연 발효된 것을 먹다가 사람이 인위적으로 발효시켜 과일주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죄 없는 원숭이를 원망할 수도 없고. 적당한 술은 몸에 이롭다는데 적당한 이 문제다. 요새는 잇몸에 염증이 생겨 몇 달 째 술을 입에 대지 못한다. 염증이 있을 때 술을 먹으면 더 심해진다고 해서 몇 달 동안 술을 끊고 치과에 다녀도 차도가 없다. 계속..

나의 이야기 2020.07.03

2020. 6. 22. 나무가 되고 싶어

나무가 되고 싶어 이현숙 차 밑에서 고양이가 납작 엎드려 기어 나온다. 무엇인가 노려보고 있다. 앞을 보니 여러 마리의 참새가 열심히 모이를 쪼아 먹고 있다. 보는 내가 더 긴장된다. 살금살금 기어 나와서 참새를 낚아채려는 순간 참새들이 잽싸게 날아간다. 고양이의 비애가 느껴진다. 남의 생명을 빼앗지 않으면 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기구한 운명은 모든 동물의 공통점이다. 내가 태어나서 7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생물이 희생되었을까?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생선 가게 앞을 지난다. 동태 코다리가 뱃속 내장은 모두 제거된 상태로 이쑤시개로 뱃가죽을 벌린 채 매달려 있다. 내가 저렇게 매달려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생각한다. 식인종들은 사람을 어떻게 요리해 먹었을까? 산채로 요리했을지도 모른다. 인간도..

나의 이야기 2020.07.03

2020. 6. 18. 지상인과 지하인

지상인과 지하인 이현숙 나와 함께 매주 구역예배를 보던 할머니가 있다. 딸이 하니 있기는 한데 딸도 살기 힘들어서 그런지 지하방에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다. 소득도 없으니 나라에서 주는 생계비 30만원으로 산다. 20만원은 월세를 내고 10만원으로 생활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 집에서 예배를 볼 때면 떡을 사다가 우리를 대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10만원 가지고 매달 전기세 수도세 내고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이 할머니 집에 가면 계단을 내려갈 때부터 어두컴컴하고 경사가 심해 항상 조심스럽다. 급기야 할머니가 계단에서 굴러 목을 다쳤다. 목에 깁스를 하고서도 교회에 열심히 나온다. 보일러가 고장 나면 서비스센터에 전화할 줄 몰라 내가 가서 그 집 보일러에 붙은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해주었다. 장마가 지..

나의 이야기 2020.07.03

2020. 6. 21 삶이 답이다 (독후감)

삶이 답이다?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를 읽고 - 이현숙 류시화는 1959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대광고등학교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와 많은 고생을 한듯하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제목이 특이해서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한데 이걸 책 제목으로 쓴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새 등에 엎혀서 새와 함께 날아가는 표지 그림도 마음을 끈다. 책에 둘려진 종이 띠에 쓴 ‘내가 묻고 삶이 답하다.’라는 글도 뭔지 모르게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류시화의 책이라고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집 한 권뿐이다. 이번에는 산문집이라 한 번 더 도전해 보았다. 류시화는 경희대 다닐 때 은사인 황순원의 “시는 젊었을..

나의 이야기 2020.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