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58

2020. 11. 21. 여인의 꽃

여인의 꽃 이현숙 친정의 언니는 나의 선구자다. 하루는 학교에 다녀와서 찔찔 울며 엄마에게 하소연한다. “엄마~ 똥구멍에서 자꾸 피가 나와.” 엄마는 깜짝 놀라며 “아이구 이년아 달거리가 시작 됐구나.” 하면서 하얀 소창으로 만든 기저귀를 주며 뒤처리 방법을 일러준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 생리가 시작됐다. 이미 언니를 보고 사전 지식을 가진 나는 놀라지 않고 엄마에게 아무 말도 안 했다. 혼자서 자꾸 닦아내다가 무심코 오강에 앉아 소변을 보고 일어나는데 엄마가 눈치 채고 하얀 헝겊으로 된 기저귀를 주며 차는 법을 알려준다. 뻘건 기저귀를 빨려면 대낮에는 남의 눈에 띌까봐 캄캄한 밤에 마당의 수돗가에서 빨아 널었다. 낮에 장독대 위에서 펄럭이는 기저귀를 보면 누가 볼까봐 낯이 뜨거워지곤 했다. 무슨..

나의 이야기 2020.11.29

2020. 10. 19. 끝없는 해부(독후감)

끝 없는 해부 프로이트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읽고 - 이현숙 프로이트의 책이라면 달랑 ‘꿈의 해석’ 한 권을 읽었을 뿐이다. 이것도 읽은 것이 아니라 그냥 씹도 않고 집어 삼켰다고나 할까? 도대체 뭔 소린지 몰라서 그냥 글자만 읽었을 뿐이다. 심리학으로 파헤친 걸작의 비밀이란 부제를 보고 혹 해서 이 책을 선택했다. 결론은 잘못 찍었다. 역시 모르겠다.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다. 작은 도시 프라이베르크에서 7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 후 빈으로 이주하여 70년 넘게 살았다. 빈 대학에 입학하여 생리학을 전공하고 빈 종합병원에서 일하다가 신경질환 전문의로 개업했다.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영국으로 망명한 후 런던에서 83세까지 살았다.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 서거 500주년에 영국 왕실..

나의 이야기 2020.10.23

2020. 10. 12. 덜먹시대

덜먹시대 이현숙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식당에 들어갔다. 앞에 앉은 젊은 사람이 반찬을 일일이 덜어 자기 접시에 담는다. 그냥 집어먹으려 했던 나도 움찔하여 하나씩 덜어 내 접시에 담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서로 손도 안 잡고 같은 그릇에 수저도 넣지 않으려는 사태가 발생했다. 어찌 보면 좋은 습관인 듯도 하다. 귀여운 레고 인형을 등장시켜 ‘건강한 식문화를 위해 반찬도 찌개도 덜어먹자’고 제안하는 농림축산식품부의 ‘덜먹’ 캠페인도 있다. 이런 식문화가 국민 건강 증진에 좋기는 하겠지만 어쩐지 우리 고유문화에는 좀 어색한 점이 있다. 우리는 커다란 양푼에 열무김치 넣고 썩 썩 비벼서 둥그렇게 둘러앉아 마구 퍼 먹어야 정도 들고 좋은데 그걸 못하니 못내 아쉽다. 우리 정서에는 덜먹보다는 함께 먹는 함먹이 어..

나의 이야기 2020.10.23

2020. 10. 4. 착한 건망증

착한 건망증 이현숙 용마산 자락길을 걷는다. 청설모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살금살금 내려온다.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다. 자세히 보니 밤인 듯하다. 위에서 먹지 왜 내려오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다람쥐나 청설모는 겨울에 먹을 양식을 땅에 묻어둔다는 것을 TV에서 본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약간의 건망증이 있어서 자기가 어디에 먹이를 묻어두었는지 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게 청설모의 착한 건망증 때문에 땅 속에 묻힌 채 겨울을 난 밤이나 도토리는 이듬해에 단단한 껍질을 뚫고 새 싹이 돋아난다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는 생각할수록 오묘하고 신비롭다. 만약 청설모의 기억력이 완벽해서 자기가 묻어둔 밤을 모조리 꺼내 먹는다면 밤은 어찌 새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단 말인가? 청설모가 늘어나면서 다람쥐는 점점..

나의 이야기 2020.10.23

2020. 9. 19. 철 든 별

미국에 있는 아들과 영상통화를 한다. 손자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그릇을 보니 눈에 익다. “어~ 그 그릇은 우리 집에 있는 거 하고 똑 같네.” 하니 며느리가 “이거 어머니가 주신 건데요? 이안이가 간식 먹을 때마다 이걸 쓰고 있어요.”한다. 언제 주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걸 보니 꽤 오래 됐나보다. 이 작은 스테인레스 공기는 내가 시집올 때 친정엄마가 사 준 것이다. 아직도 여러 개가 남아있다. 우리 부부도 여태 여기에 밥을 담아 먹는다. 국그릇도 밥그릇도 결혼할 때부터 지금까지 매일 사용하고 있다. 결혼한 지 47년이 넘었으니 참 이 그릇들은 명도 길다. 떨어뜨려도 까딱없으니 깨질 일도 없고 그야말로 만년묵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철을 사용했을까? 인간의 역사를 나눌 때 석기시대와 철기 시대가 있는..

나의 이야기 2020.10.23

2020. 8. 29. 며느리의 생일날

며느리의 생일날 이현숙 수필수업을 듣는데 동생들 카톡방에 글이 올라온다. 5번 동생이 포토원더에서 어떻게 글을 쓰느냐고 묻는다. 나는 요새 포토원더를 쓰지 않아서 앱을 깐 후 핸드폰에 있던 냉면 사진에 ‘냉면’이라고 써서 올린 후 Photo Edit로 들어가서 해보라고 하니 그런 게 없단다. 내일 만날 때 가르쳐 달라고 하여 그러마고 했다. 그런데 웬 냉면이 이렇게 썰렁하냐고 묻는다. 3번 동생도 어째 냉면에 삶은 계란도 없고 오이채도 없고 면발뿐이냐고 하기에 자초지중을 설명했다. 어제가 며느리 생일인데 요기요로 무스쿠스에 음식을 시켜 먹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취소되어 갑자기 냉장고에 있던 냉면을 삶아 먹는다고 했다. 미국에서 입국한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아들네는 아직도 격리중이다..

나의 이야기 2020.08.30

2020. 8. 22. 코로나 없는 세상으로

코로나 없는 세상으로 이현숙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핸드폰이 울린다.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열어보니 032로 시작되는 번호다. 사기전화인가 하고 끊으려다가 남편도 깼기에 “032네" 하니 공항에서 온 전화인가 보다고 받으라고 한다. 남편의 예상대로 인천공항에서 온 전화다. “오늘 미국에서 자녀분이 귀국하시는 거 맞습니까?” 하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고 한다. 아들, 며느리, 손자 이름까지 줄줄이 댔더니 “확인되었습니다.”하고는 끊는다. 다시 자려고 해도 잠이 안 온다. 실은 엊저녁에 아들이 LA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하면서 자기들이 한국 전화가 없어서 보호자 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기에 내 번호를 알려준다고 카톡이 왔었다. 난 무슨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려고 그런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

나의 이야기 2020.08.23

2020. 8. 15. 팔자에 없는 금수저

팔자에 없는 금수저 이현숙 바로 밑의 동생이 30년 넘게 살던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했다. 시부모와 함께 살던 집이라 그동안 묵은 짐을 정리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시어머니가 계실 동안은 참고 살았는데 시어머니가 102세를 살고 돌아가시자 집을 옮기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시어머니가 평생 쟁여놓은 짐에 동생이 사들인 짐까지 아래위층과 지하실까지 가득 찼으니 버릴 짐이 어마무시하게 많단다. 자매들이 모일 때마다 몇 가지씩 가지고 나와서는 이거 가질 사람 없느냐고 묻는다. 나도 몇 가지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수저 세트다. 어디서 받았나 본데 한 번도 쓰지 않은 새것이다. 금은 아니지만, 금처럼 노란색이다. 집에 가져와서 저녁상에 그 수저를 놓으니 남편이 “이거 금수저네!” 한다. 하긴 겉으로 보아서는 금수..

나의 이야기 2020.08.16

2020. 8. 8. 강아지 소변금지

강아지 소변 금지 이현숙 교회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연립 주택이 있다. 그 기둥에 웬 경고장이 붙어있다. 흘끗 쳐다보니 !!경고!! 강아지 소변 금지 CCTV 촬영중 이라고 쓰여 있다. 순간 픽하고 웃음이 났다. 개가 저걸 알아볼까? 하긴 요새는 개가 혼자 다니는 일이 거의 없다. 반드시 주인이 목줄을 하고 데리고 다닌다. 주인에게 개가 소변보지 않도록 단도리를 잘 하라는 뜻이겠지만 그래도 웃긴다. 요즘은 소변 금지라는 글씨를 보기 힘들다. 예전에는 으슥한 골목이나 전봇대 같은 곳에 소변금지 쪽지가 많이 붙어있었다. 그만큼 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노상 방뇨하는 사람들이 없어져서 그런가보다. 어쩌면 CCTV가 하도 많아서 까딱 잘못하다가는 개망신 당할 수도 있으니 알아서 기나보다. 하지만 요새도 공공연히 노..

나의 이야기 2020.08.09

2020. 8. 7. 흰머리 경로증

흰머리 경로증 이현숙 친정엄마는 유난히 언니의 머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언니는 맏딸인데다 얼굴도 예뻐서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칭찬을 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딸을 낳은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허구헌 날 머리를 길러 정성스럽게 땋아주었다. 정성을 들인 만큼 효과가 나타나니 일할 마음도 생겼을 것이다. 둘째 딸인 나는 누가 보아도 아니었다. 광대뼈는 튀어나오고 아래턱은 발달하여 그야말로 네모였다. 이런 얼굴에 아무리 공을 들인 들 효과가 없을 것을 안 엄마에게 나는 아예 포기대상이었다. 어려서부터 계속 단발머리였다. 70이 넘도록 한 번도 머리를 기르거나 땋아본 적이 없다. 엄마도 포기하고 나도 일찌감치 포기했다. 이렇게 자랐으면 내 딸이라도 정성스럽게 키웠으..

나의 이야기 2020.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