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에 하나
이현숙
7박 8일의 울릉도 여행을 마치고 크루즈선에 올랐다. 침대에 비몽사몽하고 있는데 순자씨가 갑자기 “원장님이 돌아가셨대.” 한다. 무슨 말인가 싶어 카톡방에 들어가보니 김 사장님이 올린 글이 있다. 조금 전에 운명하셨다는 것이다.
원장님과 우리들은 10여 년 전부터 매년 해외여행을 다녔다. 작년 12월 원장님이 코로나에 걸려 중환자실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두 달 가까이 되도록 퇴원 했다는 소리가 없어 걱정했는데 이런 전갈이 온 것이다. 요즘 의술이 좋으니 나아지겠지 했는데 우리의 기대와 기도도 소용이 없었나 보다. 원장님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우리끼리 룰루랄라 놀러 다닌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리다.
이날은 밤이 되어야 서울에 도착하니 다음 날 문상 가기로 했다. 같이 여행 다니던 사람들이 모두 함께 성남의료원에 가니 정연씨가 검은 상복을 입고 우릴 맞는다. 양숙 씨는 정연 씨를 껴안고 통곡을 한다. 우리 모두 눈물바다가 되었다.
정연씨는 남편 사진을 바라보며
“여보,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 왔어요.” 하며 살아있는 사람에게 말하듯 한다. 우리가 식사하는 자리에 와서도
“다들 여기 있는데 원장님만 없네.” 한다. 원장님의 빈자리를 감당하기가 무척 힘든가 보다.
김 사장님 말을 들어보니 정연씨도 코로나에 걸려 음압병동까지 들어가 치료를 받았는데 다행히 회복되어 퇴원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정연씨는 호리호리하고 약해 보이는데 원장님은 땅땅하니 건강 체질이다.
병원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여행할 곳 자료 수집하고 스크랩하느라 새벽 1시, 2시까지 밤을 패며 작업을 한다고 한다. 정연씨는 이런 모습을 보고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면 박사학위 열 개는 땄을 거라고 한다.
매일 팔굽혀펴기도 500개씩하고, 매일 6km 이상 걷고, 주말이면 등산도 열심히 했는데 병 앞에는 장사 없다더니 코로나라는 장수를 이길 수 없었나 보다.
얼마 전 에코모 치료까지 한다고 하여 사태가 심각한가 보다 했지만, 원장님은 삶에 대한 의지도 강하고, 건강 체질이니까 회복되겠지 했는데 우리의 간절한 바람도 소용없이 아주 먼 길을 떠나셨다.
원장님과 함께 남미 끝 마젤란 해협부터 그린란드까지 온 세상을 헤집고 다니던 때가 그립다. 여행 가기 전에는 원장님 병원에 모여 사전 설명회도 자주 했는데 앞으로는 이런 일도 없다 생각하니 더 허전하다.
다음 날 카톡방에 올라온 장례식 사진을 보니 더 애절하다. 눈은 내리는데 까만 상복을 입은 정연씨 모습도 애처롭고, 작은 유골함도 가슴 저리다.
원장님 가신 다음 날 뉴스에 코로나 사망자 숫자가 나온다. 49명이다. 이 중의 한 명은 원장님이구나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아려온다.
이틀 후 정연씨에게 삼우제는 잘 다녀왔느냐고 하니 잘 다녀왔다고 하며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고 지금도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고 한다. 아마 평생토록 원장님은 정연씨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성남시에서도 이비인후과 병원을 하며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감염되어 돌아가신 원장님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했나 보다. 은수미 성남시장이 표창장을 수여했다. 딸들이 대신 가서 상장을 받았다고 한다. 하긴 원장님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 없다면 아마 사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맘 편히 사는 것도 어쩌면 수많은 의료진의 헌신적인 봉사 덕일 것이다.
코로나가 벌써 2년 넘게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온 국민이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쥐 죽은 듯이 지내야 할까? 우리 팀도 3년째 해외여행을 못 가고 있다.
거리두기 정책에 따라 4인 이상 집합 금지, 6인 이상 집합 금지 명령이 내려 우리도 딸네 식구 얼굴 본 지 2년이 되어간다.
이런 상황이 오래 계속되다 보니 확진자 수가 17만 명이 넘는다는데도 요새는 국내 여행도 다니고 등산도 다닌다. 코로나에 항복하여 방콕 신세로 지내는 것보다 차라리 죽을 때 죽더라도 나 하고 싶은 것 하며 살다가 죽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긴 내가 아직 죽을병에 안 걸려서 입방정을 떠는지도 모른다. 막상 죽을병에 걸리면 똥오줌 싸대면서 제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할 것이다.
요새는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마 잘 죽는 게 잘사는 것 아닐까? 아무래도 그건 죽어봐야 알 것 같다.
비록 원장님의 몸은 사라졌을지라도 그 영혼은 우리와 함께 할 것이고 아마 천국에서도 호기심이 발동해 여기저기 구경 다니고 있을 것이다. 나중에 우리 모두 천국에서 만나 함께 천국 여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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