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2. 3. 23. 육신을 깨다

아~ 네모네! 2022. 3. 25. 15:52

육신을 깨다

이현숙

 

  78일의 울릉도 여행을 마치고 크루즈선에 올랐다. 침대에 누워 비몽사몽 헤매고 있는데 순자 씨가 갑자기 원장님이 돌아가셨대.” 한다. 무슨 말인가 싶어 벌떡 일어나 카톡방에 들어가 보니 김 사장님이 올린 글이 있다. 조금 전 운명하셨다는 것이다.

  원장님과 김 사장님 그리고 티엔티 회원들은 해마다 10년 넘게 해외여행을 다녔다. 원장님은 멋진 여행을 준비하느라 새벽 1, 2시까지 자료를 모으고 여기저기 조사를 한다.

  그 덕에 우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얹는다. 어느 나라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자, 어느 호텔에서 자자, 어느 식당에 가서 무엇을 먹어보자, 시시콜콜 정해주면 김 사장님은 거기에 맞게 준비한다.

  일반 여행사에는 없는 스케줄로 유럽과 남미 끝 마젤란 해협까지, 북쪽 끝 그린란드까지 온 세상을 헤집고 다녔다. 코로나로 2년간 여행을 못 갔는데 급기야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원장님은 이비인후과 의사라서 환자를 보려면 환자의 얼굴 가까이 들여다봐야 하니 코로나에 매우 취약하다. 결국 환자에게 병이 옮아 죽음에 이르렀으니 순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노고를 치하하여 은수미 성남시장이 표창장을 주었다. 돌아가신 후 표창장이 무슨 소용이겠냐만 그래도 그 공을 알아주니 다행이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려면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깨고 나오는 순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될 것이다. 아기가 자궁에서 세상으로 나오려면 죽음의 고통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눈을 떴을 때 바라보는 경이로움은 얼마나 클까?

  이생에서 저세상으로 넘어갈 때도 죽음의 문턱을 넘으려면 얼마나 큰 고통이 따를까? 육신을 깨고 내 영혼이 밖으로 나가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따를 것이다. 하지만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어미 닭이 병아리가 나오는 것을 도와주듯 저승사자가 와서 나를 도와주면 좋으련만.

  아마도 육신 밖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경이로울 것이다. 드론으로 찍은 영상만 봐도 멋진데 하늘에 내가 직접 떠서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기막힐까?

  이 과정을 겪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으니 아무도 알 수 없다. 죽음 너머의 세상이 어떤지 모르니 막연한 불안과 공포가 우릴 엄습한다. 언젠가 우리 모두 이 관문을 통과하면 멋지고도 아름다운 세상이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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