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2. 2. 1. 복 많이 받았어요

아~ 네모네! 2022. 2. 1. 14:41

복 많이 받았어요

이현숙

 

  설날 아침이다. 집집마다 떡국을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

해피 뉴 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와 그림이 무수히 오간다.

이런 인사를 받으면 어떤 복을 받으면 좋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엄청난 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났다는 것이 기적 같은 축복이다. 뇌출혈로 쓰러져 1년이 되도록 코에 줄을 끼고, 목구멍에 구멍 뚫고 눈만 깜빡이는 친구의 동영상을 볼 때면 언제나 일어날 수 있을지 앞날이 묘연하다.

  코로나에 걸려 산소호흡을 하며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지인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벌써 한 달이 넘게 고생하고 있다. 평소에 그토록 건강하던 사람이 하찮은 바이러스에게 한 방에 넘어가다니 믿을 수가 없다.

  아무 일 없이 일어나 밥상을 받고 음식을 씹을 수 있는 것은 엄청난 기적이다. 남편은 고등학교 다닐 때 집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가지 못했다. 집에 쌀이 없으니 시어머니는 점심시간이 되면 집에서 국수를 끓여 학교 앞으로 가져왔단다. 교문 사이로 냄비를 밀어주고 시어머니는 밖에서 기다렸다. 얼른 먹고 빈 냄비를 다시 밖으로 보내면 시어머니가 가지고 갔단다.

  그마저도 없을 때는 점심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수돗물만 들이켰다고 한다. 밖에서 아이들이 다 먹기를 기다리면 같은 반에 있던 육촌이 도시락을 반 만 먹고 밖으로 나온단다. 그러면 남편이 들어가서 반을 먹었다고 한다. 한창 자랄 나이에 이렇게 먹지를 못하니 폐결핵에 걸렸다. 폐에 앓고 난 흔적이 많아 군대도 못 갔다.

  그런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먹을 것이 지천이니 그야말로 먹을 복이 넝쿨째 떨어진 것이다. 하얀 쌀밥에 육전, 굴전, 굴비, 거기다 막걸리까지 곁들이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새해가 될 때마다 복 많이 받으라고 하는데 이미 받은 복이 넘쳐난다. 오늘을 누리는 것도 그렇고,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기적이다.

  올해는 설날에 눈이 내려 온 산이 하얗다. 집 앞 망우산에 오르니 그야말로 설국이다. 새해 첫날부터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이렇게 눈 위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큰 축복인가.

  우리가 받은 복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새해 인사할 때마다 복 많이 받으라고 하지 말고 복 많이 받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더 큰 복이 몰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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