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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2. 1. 31. 개는 억울해

by 아~ 네모네! 2022. 1. 31.

개는 억울해

이현숙

 

  어려서 경기도 광주군에 있는 큰집에 가면 큰어머니가 개떡을 만들어주었다. 보릿가루에 소금만 넣고 그냥 쪄준 것 같다. 설탕도 이스트도 들어있지 않은 그냥 밀가루 덩어리다. 그래도 그걸 맛있다고 큰 집 뒤쪽에 있는 소막고개 나무 그늘에 앉아서 먹었다.

  지금의 떡이나 빵은 그야말로 달콤하고 고소하고 맛깔나는 환상의 맛이다. 색깔도 오색찬란 휘황찬란하다. 개떡은 거무스름하고 칙칙한 누런색이다.

  사람들은 별 볼 일 없는 것에 왜 자를 붙였을까? 개살구는 산에 자생하는 작고 맛없는 살구다. 개복숭아도 크기가 작고 맛도 없다. 꿈도 별 볼 일 없는 꿈은 개꿈이라고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있다. 하다못해 똥까지도 개똥은 최하위를 차지하는 것 같다. 욕을 할 때도 소 새끼, 돼지 새끼라는 말보다 개새끼라는 말을 많이 쓴다. 개들이 들으면 엄청 억울해할 것 같다.

그런데 좋은 데다 자를 붙인 경우도 있다. 망초꽃보다 개망초꽃이 훨씬 예쁘다. 망초꽃은 색깔도 티미하고 꽃송이도 작은데 개망초꽃은 노란색 바깥쪽으로 하얀 꽃잎이 달려 계란후라이를 닮았다.

  오뉴월 개 팔자라는 건 팔자가 좋다는 것인지, 복날이 가까워 죽을 날이 다가오니 나쁜 팔자라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개를 키워서 복날 잡아 몸보신으로 했다. 애완용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개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나은 경우도 많다. 예쁜 옷 사입히지,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발에 헝겊으로 만든 신발도 신었다. 머리털도 화려하게 염색하여 보기에도 인간보다 낫다. 허구한 날 주인과 함께 산책하고 주인 품에 안겨 평화를 만끽한다. 거기다 주인이 개의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존댓말까지 하니 아마 개는 자신이 인간과 같은 종의 생물인 줄 착각할 거다. 웬만한 집 자식은 이만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큰다. 구박만 받고 살다가 죽어가는 아이도 많다.

  이쯤 되면 개들은 억울해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개떡

개망초

 

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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