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2. 1. 16. 나이가 무슨 죄?

아~ 네모네! 2022. 1. 17. 14:11

나이가 무슨 죄?

이현숙

 

  ‘라떼는 말이야~’

한동안 라떼라는 유행어가 돌아다녔다. ‘나 때는 말이야~’ 하면서 옛날얘기를 끝없이 이어가는 상사의 추억담을 들어야 하는 사원들의 애환을 나타낸 말이다. 그래서 라떼 꼰대라는 말도 생겨났다.

  원래 라떼(latte)는 이탈리아어로 우유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카페라떼는 우유를 넣은 커피를 뜻한다. 꼰대는 아버지나 교사 등 나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 청소년들 사이에서 자신의 경험을 자기보다 지위가 낮거나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을 일컫는 은어로 쓰이게 되었다. 꼰대가 되기 싫어서 꼰대 테스트법, 꼰대가 되지 않는 법 등 별별 내용이 다 돌아다닌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옛 추억에 빠져 살게 마련이다. 산행을 하면서도 내가 젊었을 때는 펄펄 날아다녔다는 둥, 완전 날다람쥐였다는 둥 옛날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뭔가 기억이 나지 않으면 내가 옛날에는 엄청 총명했다는 둥, 학교에서 날렸다는 둥 헛소리를 지껄인다. 나도 종종 이런 짓을 한다. 사실 젊어서나 지금이나 생각해보면 별 차이가 없다. 젊어서도 산에 오르려면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뒤에서 벌벌 기었다. 중요한 것을 깜빡깜빡 잊어서 곤경에 빠진 일도 많다.

  그런데 모든 것을 나이 탓으로 돌리며 옛날에는 아주 잘 나가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말한다. 나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내가 무슨 죄냐고 따질 것 같다. 옛날 일은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으니 모든 죄를 나이에게 뒤집어씌운다. 나이가 이걸 알면 엄청 억울해할 것이다.

  새해가 돌아오면 떡국을 먹으며 한 살 더 먹는 것을 축하한다. 그래서 떡국을 먹는 것이 곧 나이를 먹는 것으로 생각한다. 떡국은 안 먹을 수도 있지만, 나이는 안 먹을 수가 없다. 세월이 억지로 나이를 먹인다. 안 먹겠다고 발버둥 쳐봐도 소용이 없다.

  어릴 때는 나이가 많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늙어서는 나이가 적다고 속이기도 한다. 나는 어렸을 때도 나이 들어 보여 조숙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늙어서도 마찬가지다. 40대 초반부터 할머니 소리를 들었다. 버스에서 젊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면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난처했다. 70대 초반부터는 ‘80은 넘으셨죠?’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굳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뭐해서 그냥 비시시 웃고 만다.

  세월이 흐르면 딱딱한 바윗덩어리도 금이 가고 푸슬푸슬 부서진다. 사람이나 동식물도 마찬가지다. 온몸에 주름이 잡히고 머리카락도 푸시시 윤기를 잃어간다. 바위가 부서져 흙이 되듯 우리 몸도 부서지고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 이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곱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안간힘을 쓰며 거부하는 우리 모양이 안타깝다.

  옛날부터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했다. 내 몸도 이 구석 저 구석 망가져 성한 곳이 없다. 퇴행성 관절염에 골다공증에 고지혈, 당뇨까지 온갖 병이 난무한다. 눈에도 결석이 생겨 네 개나 떼어냈다. 여기저기 망가질 때마다 수리하는데 해도 해도 안 되면 아주 버리고 갈 수밖에 없다.

  이제 세월에게 두 손 들어 항복하고 나이에 맞게 현실에 순응하며 아름답게 늙어가야겠다. 이게 또 꼰대 발언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이는 죄가 없으니 나이 탓은 그만하고 조용히 입 다물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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