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징검다리
이현숙
아침 식사 후 식탁에 삶은 계란을 한 개 꺼내놓는다. 냉동실에서 떡을 꺼내어 접시에 담아놓는다. 점심때 남편이 먹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가 약속이 있는 날은 남편의 점심을 챙겨놓고 나온다. 며칠씩 여행이라도 가려면 몇 가지 반찬도 만들고 국을 끓여 놓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편의 생활력이 떨어지는지 나에게 의지하는 것이 갈수록 늘어난다. 코로나19로 새벽기도회가 없으니 목사님이 매일 기도문을 교회 카톡방에 올린다. 남편은 눈이 나쁘다는 핑계로 나를 보고 읽으라고 한다. 남편은 오른쪽 눈의 시력이 너무 나빠서 거의 안 보이는 지경이다. 짝눈이 되어서 그런지 길 가다가 넘어지기도 잘하고 술이나 물을 따를 때 보면 옆으로 흘리기도 잘한다.
영상예배를 볼 때도 내가 틀어놓고 함께 듣는다. 아들의 설교 내용을 볼 때도 내 노트북을 TV에 연결하고 내가 틀어줘야 겨우 본다. 친구가 상을 당하거나 자녀의 결혼 소식이 오면 나에게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보내 달라고 핸드폰에 적힌 계좌번호와 돈을 들고 온다. 인터넷 뱅킹을 하지 못하는 남편은 나를 비서 부리듯 한다. 핸드폰을 보다가도 안 되는 것은 무조건 나에게 묻는다. 나도 별로 잘하는 게 없으니 메모해 놨다가 주말에 아들이 오면 물어보곤 한다.
내가 온종일 산에 갈 때면 남편 혼자 하루를 잘 보냈는지 궁금해서 전철에 오르면 지금 어느 역에 있는지 남편에게 카톡을 보낸다. 남편에게서 답장이 오면 죽지 않고 살아있구나, 카톡에 답장할 정도로 정신은 있구나, 하며 안심을 한다.
매사에 나를 의지하는 남편을 보면 마치 내가 징검다리가 된 기분이다. 개울을 만나면 내가 징검다리를 놔주어야 건너간다. 이러다가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라고 남편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지만 아무래도 내가 더 오래 살아야 할 것 같다.
남편 혼자 남으면 어떻게 살기는 하겠지만 엄청나게 힘들어할 것 같다. 젊어서는 혼자서도 잘 살 것 같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쩔쩔맨다. 남자들이 여자보다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저 남편이 먼저 가고 내가 뒤처리를 다 한 후 가는 게 정도인 것 같다. 그래서 옛날부터 남편보다 먼저 죽은 부인은 1년상을 치르고 나중 죽은 사람은 3년상을 치러준다고 했나 보다. 아니면 남자는 혼자 살기 힘드니까 빨리 재혼하라고 1년 만에 탈상한 것일까?
친정엄마는 60세에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94세까지 사셨다. 34년은 더 산 셈이다. 물론 몇 년 후 재혼하셨지만, 엄마 제사상에 꼬박꼬박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저 남자는 여자 앞에서 가야 그게 가장 큰 복이다.
늙은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 건강, 둘째 친구, 셋째 돈이라고 한다. 늙은 남자에게 필요한 것은 첫째 부인, 둘째 마누라, 셋째 집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저 남편은 부인만 있으면 되나 보다. 모든 것은 부인이 알아서 다 처리해주니 말이다. 내가 이런 부인은 아니지만, 남편의 징검다리 역할은 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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